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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평범 속의 비범의 삶

  • 총회자료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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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pr 03,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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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범 속의 비범의 삶

안석수 목사

*본문/ 20:1

 

본문은 바울이 3년 동안 깊이 정든 에베소의 그리스도인들과 일일이 포옹하여 작별하고, 그들을 떠난 장면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바울은 그 3년 동안 에베소를 중심으로 하여, 오늘날 터기 대륙의 서부 지역인 아시아의 사람들에게만 복음을 전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바울은 우상과 타락의 도시인 에베소에서, 고린도 교인들에게 고린도 전서를 써 보내기도 하였습니다. 16장에 이르는 장문의 편지였습니다. 그 편지가 신약성경의 일부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된 것입니다. 그리고 에베소에서의 바울의 언행도 하나님의 말씀인 사도행전에 기록되었습니다. 에베소에서 바울의 말과 행동 그리고 글이 모두 하나님의 말씀이 된 것입니다.

 

바울의 삶이 에베소에서의 3년 동안만 그랬던 것은 아닙니다. 주님의 부르심을 받은 이후 바울의 전 생애가 그와 같았습니다. 바울이 로마에서 참수형을 당해 죽을 때까지 어느 곳에서든, 누구에게든, 바울은 깊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바울의 말과 행동 그리고 글은 2천 년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21세기를 살아가는 우리까지 새롭게 변화시키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중해 세계를 석권한 로마제국 내에서 바울은 보잘것없는 존재에 지나지 않았지만, 바울을 통해 역사하신 하나님께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신 창조주시기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어떤 사람의 생애에서 3년은 이미 기억에서조차 지워져 버린 잃어버린 3년 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에게 3년은 세월이 흘러갈수록 더욱 또렷하게 되살아나는 3년일 수도 있습니다. 바울의 에베소 체류의 3년은, 이 세상 그 누구도 지울 수 없는, 영원한 3년이었습니다.

 

우리가 육체를 지니고 있는 한, 우리는 결코 천년만년 살 수 없습니다. 인간의 생로병사는 누구도 거역할 수 없는 자연법칙입니다. 천하장사라 할지라도 세월의 흐름과 함께 육체는 반드시 쇠하고, 언젠가 죽음으로 끝나기 마련입니다. 어떻습니까? 우리 각 사람의 인생에서 지난 3년은 어떤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까? 우리가 태어난 이래 몇 년을 살아왔든, 우리의 지난 인생 전체는 무슨 의미였습니까? 우리의 지난 생애에서 상당 기간이 이미 기억에서조차 지워져 버린, 무의미한 시간으로 사라져 버린 것은 아닙니까? 그러나 우리 생애가 아무리 하찮게 보여도, 우리가 매사에 주님의 말씀을 좇아 주어진 자신의 삶에 충실하게 살아왔다면, 우리의 기억에서 지워져 버린 시간마저 주님의 영원 속에서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여 반드시 절대적인 의미로 변화될 것입니다.

 

성경은 총 66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66권 가운데 사람의 이름이 제목으로 붙은 책이 41권이나 됩니다. 그러나 그 중에서 39권이 남성의 이름이고, 여성은 단 두 명입니다. 바로 룻과 에스더입니다. 룻과 에스더는 아주 대조적인 인물입니다. 유대 여인이었던 에스더는 주전 485년부터 464년까지 만 21년 동안 오늘날 인도 인더스 강 서쪽으로부터 아프리카 이디오피아에 이르기까지 광대한 영토를 통치했던 페르시아 제국 크세르크세스 왕의 왕후였습니다. 이를테면 에스더는 그 광대한 페르시아 제국의 여인들 가운데 가장 지체 높은 여인이었습니다.

그러나 에스더는 페르시아 제국의 왕후 자리를 자기 일신만의 부귀영화를 누리는 수단으로 삼지 않았습니다. 전 유대 민족을 학살하여 말살하려는 하만의 흉계를 알고, 에스더는 죽으면 죽으리라.”(4:116) 결단하고 크세르크세스 왕에게 직접 청원하여 전 유대 민족을 살렸습니다. 자신의 부귀영화뿐 아니라 자신의 목숨을 걸고, 전멸의 위기에 봉착한 자기 민족 모두를 살려 낸 것이었습니다. 에스더는 미모만 출중한 여성이 아니라, 신앙의 여걸이었습니다. 그녀의 그 모든 행적이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에 기록되고, 그 책에 그녀의 이름이 붙은 것은 조금도 이상한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에스더에 비한다면 룻은 너무나도 보잘것없는 여인이었습니다. 에스더보다 500년 앞서 살았던 룻은, 유대인들이 짐승처럼 여기는 이방인, 모압 여인이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룻은 젊은 나이애 남편을 잃은 청상과부였습니다. 유대인들에게 과부는 가장 연약한 인간의 상징이었습니다. 페르시아 제국의 왕후 에스더가 이 세상 모든 여인 가운데 가장 신분이 높은 여인이었다면, 가난한 이방 여인에 청상과부였던 룻은 이 세상에서 가장 하찮은 여인인 셈이었습니다. 그렇다고 룻이 에스더처럼, 자기 민족을 위기에서 구해낸 민족의 영웅이었던 것도 아니었습니다. 룻의 일평생을 통해 룻이 행한 두드러진 일이라고는 아무것도 없습니다.

룻이 한 일이라고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으로 역시 과부였던 시어머니 나오미를 지성으로 모신 것과, 그 며느리의 효심에 감복한 시어머니 나오미의 중재로 보아스라는 유대인에게 개가하여 아들을 낳아 키운 것밖에 없습니다. 가장 보잘것없는 이방 여인에, 가장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룻이었지만, 그 여인의 이름이 페르시아 제국의 왕후였던 에스더와 함께 구약성경의 책 제목으로 기록된 단 두 여인 가운데 한 명이 되었습니다.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 수 있을까요?

 

룻기 4:16-17입니다.

나오미가 아기를 받아 품에 품고 그의 양육자가 되니, 그의 이웃 여인들이 그에게 이름을 지어 주며 나오미에게 아들이 태어났다 하여 그의 이름을 오벳이라 하였는데, 그는 다윗이 아버지인 이새의 아버지 였더라.”

개가한 룻은, 남편 보아스와의 사이에 태어난 아이를 시어머니 나오미의 품에 안겨 주었습니다. 이웃 여인들이 나오미에게 축하하며 룻의 아들에게 오벳이란 이름을 지어 주었습니다. 지금 보아스와 룻 사이에서 태어난 것은 핏덩이 오벳뿐입니다. 성경은 지금 막 태어난 핏덩이 오벳이, 미래에 태어날 다윗의 할아버지라는 것입니다.

그것은 보잘것없는 이방 여인 룻은 밥하고 빨래하는 것외에 아무것도 한 것이 없는 평범한 가정주부였지만, 바로 그 룻에 의해 이스라엘 역사의 미래가 새로워지고 있음을 우리에게 일깨워 주기 위함입니다.

 

룻의 남편 보아스, 아들 오벳, 그리고 증손자 다윗의 족보입니다. 놀라운 것은 바로 이 족보가 마태복음 1에서 예수님의 족보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로 이 족보를 통해 이 땅에 오신 예수님에 의해 인류의 역사가 새로워졌습니다. 이것이 룻기의 결론입니다. 3천 년 베들레헴의 여인들은 두 눈을 지니고서도 룻이 낳은 핏덩이 오벳 밖에 보지 못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룻기를 통해 룻이 낳은 핏덩이 오벳을 보면서 지극히 평범했던 룻에 의해 이스라엘뿐 아니라 인류의 역사에 새로운 지평이 열리고 있음을 동시에 볼 것을 원하십니다.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성경을 보면, 세상에서 가장 존귀한 여인으로 목숨을 걸고 자기 민족을 구했던 페르시아 제국의 왕후 에스더나, 보잘것없는 이방 여인으로 지극히 평범한 가정주부였던 룻이나, 하나님을 중심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한, 하나님께서 그들을 똑같이 평가하신다는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 보기에는 하늘과 땅만큼 차이가 나는, 전혀 상반된 인생을 살았던 그 두 여인의 이름이 동일하게,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의 책 제목이 될 수 있었던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영적인 눈으로, 우리 각 사람의 현재 모습을 똑 바로 보면서 또 한편으로는 언젠가 사랑하는 사람들과 작별하고 이 세상을 떠나는 우리의 모습을 바라보십시다.

 

현재 자신의 모습과 상황이 어떠하든, 언젠가 이 세상을 작별하고 하나님 앞에 설 때,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 칭찬을 받고 싶습니까?

그렇다면 에스더처럼 지금 존귀한 자리에 있더라도, 결코 교만에 빠지지 마시기 바랍니다. 에스더를 본받아 자신이 지닌 모든 것을, 하나님의 뜻을 좇아 민족과 인류를 살리는 도구로 사용하십시다. 반대로 룻처럼 아무것도 내세울 것이 없더라도, 열등감에 사로잡히거나 자신을 과소평가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맡겨 주신 그 귀한 소명의 자리를, 하나님을 경외하는 믿음으로 최선을 다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 모두 말씀을 따르려다 모함을 받고 불이익을 당해도, 바울처럼 포기 하거나 절망하지 말고 걸어야 할 길을 함께 꿋꿋하게 걸어가십시다.

 

사랑하는 여러분!

룻이 이 세상을 작별하고 떠난 지 3천 년이 지났어도, 에스더가 이 세상을 떠난 지 25백년이 지났어도, 사도 바울이 참수형을 당해 이 세상을 작별하고 떠난 지 2천 년이 지났어도, 그들이 살아낸 세월과 삶이 여전히 이 세상을 새롭게 하는 것처럼 ,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좇아 주어진 우리의 삶에 믿음으로 최선을 다하는 한, 우리가 언젠가 이 세상을 떠난 뒤에도, 우리로 인해 역사의 지평이 반드시 새로워질 것입니다.

그 이유는 이미 영으로 우리 안에 임해 계시고, 벌써부터 하나님의 말씀으로 우리를 인도하시고, 매 순간마다 우리를 통해 역사하시는 하나님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신 창조주이시기 때문입니다.

 

祈禱)

하나님 아버지, 오늘도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어떤 이들은 세상을 떠났으면서도 두고두고 살아 있는 사람들에게 악영향을 미칠 것이요, 어떤 이들은 세월이 흘러갈수록 더 많은 사람들의 삶을 새롭게 해 줄 것입니다.

우리 모두 주님 안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바로 보면서 이 세상을 작별하고 떠날 그날을 바라보며 살아가게 해 주옵소서. 에스더처럼 존귀한 자리에 있어도 교만하지 않으며, 룻과 같이 겉으로 드러낼 것 없는 삶을 살아도 스스로 탄식하지 않으며, 바울처럼 모함을 받아도 가야 할 길을 포기하지 않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언제가 우리가 사람들과 작별하고 이 세상을 떠나는 순간, 일말의 후회도 없이, 영원하신 하나님의 품에 기쁨으로 안기게 해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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