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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흉년 속에서

  • 총회자료실
  • 관리자
  • Aug 14,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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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생의 흉년 속에서

안석수 목사

*본문/ 룻기 1:1-5

 

유명한 정신과 의사이자 작가인 스캇 펙이 쓴 <아직도 가야할 길>이란 책이 있습니다. 그 책에서 가장 먼저 다룬 주제는 삶은 문제와 고통의 연속이다라는 것이고, 그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삶은 고해이다. 이것은 위대한 진리이다. 다시 말하면 이 세상에서 가장 위대한 진리 중의 하나이다. 이것이 위대한 진리인 까닭은 진정으로 이 진리를 깨닫게 되면 그것을 뛰어넘을 수 있기 때문이다. 삶의 힘들다는 것을 알게 되면, 그 사실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게 되면, 삶은 더 이상 힘들지 않게 된다. 일단 받아들이게 되면 삶이 힘들다다는 사실은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게 때문이다.”

목회자로서 저도 스캇 펙의 이야기에 공감합니다. 그가 주장하는 것은, 인생이 고해, 고난의 바다인 것은 틀림없지만 그것을 피하지 않고 맞선다면 그 고통이 더 이상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이어서 스캇 펙은 우리들 거의 대부분은 당연한 문제를 두려워하거나 피하려 든다. 문제를 질질 끌면서 문제가 저절로 사라지기를 바란다. 문제를 무시하고 잊어버리고 문제가 없는 것처럼 행동한다. 심지어는 문제를 잊기 위한 보조적인 수단으로 약물을 복용하여 결국에는 고통스러울 정도로 자신을 마비시킴으로써 고통을 안겨준 문제를 잊기도 한다. 우리는 문제와 정면으로 부딪치기보다는 주변에서 맴돌려 한다. 문제 안에서 괴로워하기보다는 문제 밖으로 빠져 나오고 싶어 한다.”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인생에 고통을 가져오는 문제와 피하려 하지 않고 맞서 싸워야 하지만 우리는 그것을 두려워하면서 피합니다. 바로 이것이 문제입니다. 약에 의존하거나 술과 도박 등에 매달려 문제를 회피하려 하면, 오히려 고통의 문제에 함몰되어버릴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엘리멜렉이 바로 이 부분에서 실패한 사람입니다. 어느 날 엘리멜렉의 집안에 큰 먹구름이 몰려 왔습니다. 1:1 - “사사들이 치피하던 때에 그 땅에 흉년이 드니라.”

흉년이라는 큰 먹구름이 엘리멜렉과 그 가정에 몰려왔습니다. 스캇 펙이 말한 인생의 고통이 찾아온 것입니다. 그렇게 시작된 인생의 비극은 어떻게 이어졌을까요?

본문 룻13나오미의 남편 엘리멜렉이 죽고 나오미와 그의 두 아들이 남았으며”5말론과 기룐 두 사람이 다 죽교 그 여인은 두 아들과 남편 뒤에 남았더라.”

흉년이 몰려 왔으며 아버지이자 남편인 가장이 죽었습니다. 이어서 두 아륻마저 죽고 말았습니다. 룻기는 이토록 몰락하는 한 가족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그러나 비극으로 시작된 룻기는 비극적으로 끝나지 않아 우리에게 은혜가 되는 것입니다.

룻기의 내용은 두 가지로 정리할 수 있습니다. 한 가지는 가장 엘리멜렉의 판단착오와 그로 인해 비참한 수렁에서 빠져가는 몰락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다른 것은 그렇게 실패와 절망으로 무너진 가정에 개입하시어 그 실패까지도 사용하여 일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흉년이 닥쳐 한 집안을 그대로 집어삼켜버렸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어디에서 일어났는지가 중요합니다. 흉년은 베들레헴에서 일어났습니다. 이것이 왜 문제일까요? 영적으로 볼 때 유대 베들레헴은 흉년이 들어서는 안 되는 땅이기 때문 입니다.

베들레헴은 가나안에 속한 땅입니다. 가나안은 하나님의 약속의 땅입니다. 그곳은 아름답고 광대한 땅,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라고 출애굽기 38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베들레헴은 이름 자체도 떡집이라는 뜻입니다. 그것은 그 땅을 풍요롭게 해주시겠다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약속하신 젖과 꿀이 흐르는 그곳에 어떻게 흉년이 들 수 있을까요?

 

우리들이 살다보면 도저히 흉년이 올 수 없는 곳에 흉년이 찾아오는 경우를 종종 볼 수 있습니다. 아니, 어떻게 저렇게 예수를 잘 믿는 가정에 저런 아픔이 찾아올 수 있단 말인가?”“예수를 잘 믿는 저 사람에게 어떻게 저런 인생의 흉년이 찾아올 수 있단 말인가?”하는 의구심으로 가득한 것이 인생입니다. 그럴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도저히 설명할 길이 없고, 이해할 수도 없는 인생의 흉년이 몰아닥칠 때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하는 것일까요?

 

예수를 잘 믿는 사람이 예배드리러 가다가 교통사고를 당하여 다리가 부러졌습니다. 급히 응급실로 이송되어 치료를 하고 깁스로 다리를 잘 고정해 놓았습니다. 그 소식을 들은 교우들은 다 같이 문병을 가서는 잘 고쳐 달라고 곧 회복하게 해달라고 기도합니다. 또 본인은 믿음이 있으니 정말 열심히 기도했을 것입니다. 그러자 하나님이 그 기도를 들으시고 부러진 다리를 고쳐주셨습니다. 할렐루야!

우리들이 흔히 듣는 간증들이 대개 이런 것들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병주고 약주는 분이실까요? 처음부터 다리가 부러지지 않도록 해주셨으면 좋았을 뗀데 왜 부러뜨렸다가 기도하면 고쳐 주시는 것일까요?

여기에 머물면 우리의 신앙은 밑바닥 수준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해되지 않는 사고를 만나거나 아픔을 당할 때, 이것을 해결해 주옵소서.” “고쳐 주옵소서.”라고 기도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 제게 왜 이런 아픔이 찾아 왔습니까? 이 고통을 통해 제게 무엇을 말씀하시길 원하십니까?”라고 기도해야 합니다.

 

젖과 꿀이 흐르는 복된 땅 베들레헴에 흉년이 찾아 왔습니다. 떡집에 떡이 떨어진 것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있을 수 있을까요?

그 때 우리는 그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하면서 그 고난을 통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길 원하시는 말씀이 무엇인지 깊이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러나 엘리멜렉은 그러기 싫어서 도망쳐 버렸습니다. 현실에서 도피한 것입니다. 이것이 비극의 출발이었습니다.

 

우리는 엘리멜렉과 같은 실수를 범해서는 안 됩니다. 적어도 예수님을 믿는 하나님의 자녀들에게 찾아오는 고통이나 고난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뜻이 있는 것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 고통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고자 하는 메시지가 반드시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아픔과 고통이 찾아오면 그 문제를 가지고 하나님 앞에 나아가 기도해야 합니다.

2:5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7:14 - “형통한 날에는 기뻐하고 곤고한 날에는 되돌아보아라. 이 두 가지를 하나님은 병행하게 하사 사람이 그의 장래 일을 능히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느니라.”

 

이런 면에서 보면 우리의 신앙 수준은 너무 얕습니다. 모든 것이 우리들 위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형통한 날과 곤고한 날 두 가지를 병행하게 하십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창조 질서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눈앞에 문제만 가지고 언제 상황이 좋아질 것인지에만 관심이 있습니다. 게다가 하나님은 우리가 장래 일을 헤아려 알지 못하게 하셨는데, 우리는 틈만 나면 누구에게 예언의 은사가 있다더라, 누가 잘 맞춘다더라하면서 하나님이 알지 못하게 하신 것을 알기 위해 애를 씁니다.

우리가 할 일은 다만 그날 형통하면 그에 기뻐하고 감사하며 즐거워하고 흉년이 찾아오면 깊이 돌아보아 하나님께서 이 일을 통해 무슨 말씀을 주시고자 하시는지 돌아보는 것입니다.

C, S 루이스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고통은 귀먹은 세상을 깨우기 위한 하나님의 메가폰이다.”

고통은 온갖 산만한 소리에 집중하느라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고 엉뚱한 길로 가는 우리들을 일깨우는 하나님의 메가폰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확성기로 들려주시듯 고통으로 우리들을 집중시키셔서 바른 길로 가게 하십니다.

117:67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부러진 다리를 고쳐주시는 것이 전부가 아닙니다. 우리의 인생에 찾아오는 아픔, 밤에 잠 못 이루며 신음하는 절망적인 실패, 말로 할 수 없는 인생의 흉년이 찾아왔을 때, 우리도 시편 기자와 같은 고백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고통 안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발견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하여 고난이 우리를 성숙하게 하는 하나님의 복의 통로요, 변장하고 찾아오는 복의 도구라는 사실을 깨닫는 수준까지 성장하는 진실한 신앙인이 되어야 합니다.

 

엘리멜렉은 자신에게 찾아온 이해할 수 없는 고통과 씨름하는 대신에 모압으로 도망가 버렸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먼저 우리는 하나님, 왜 떡집이라는 복의 땅,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 베들레헴에 흉년이 찾아 왔습니까?”하는 질문을 던져야 합니다.

이 질문의 답은 룻기 11에 있습니다.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이것이 답입니다. 베들레헴에 흉년이 든 것은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 곧 사사시대입니다. 이때에는 한 마디로 타락의 시대였습니다. 상상을 초월하는 성적 타락과 도덕적 타락이 일어났고, 그것은 극심한 혼란과 배교의 시대로 이어졌습니다. 이 시대를 한 마디로 표현하는 구절이 사사기 맨 마지막에 나오는 말씀입니다. “그때에 이스라엘에 왕이 없으므로 사람이 각기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였더라.”

성경은 사사 시대를 자신들을 다스릴 왕이 없던 시대라고 요약했습니다. 즉 죄성을 가진 인간의 본능을 통제할 기능이 마비되었습니다. 그러다보니 상상할 수 없는 전쟁과 살육과 c=타락이 이어졌습니다. 혼미하고 타락한 시대의 베들레헴에 흉년이 온 것입니다.

사사기타락, 징계, 회개, 회복이라는 4단계의 사이클이 계속되는 구조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룻기는 바로 그런 사사시대 때에 일어난 일을 기록하 것입니다. 흉년이 왜 생겼을까요? 왜 젖과 꿀이 흐르는 복된 당 베들레헴에 흉년이라는 절망적인 비극이 찾아왔을까요? 그것은 그 당시 타락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징계하시기 위해 하나님의 의도하신 흉년이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는 인생의 흉년을 보면서 하나님의 깊으신 뜻을 헤아려 회개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들 가슴에 담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살아가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어야 마땅할 것입니다.

 

祈禱)

하나님 아버지, 인생에 고통으로 오는 흉년을 당했을 때에 두려워하지 말고 피하고 도망치려 하지 말게 하옵소서. 우리에게 아픔과 고통이 찾아오면 그 고통 가운데 주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헤아려 회개하고 비극적인 결말을 맞지 않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고난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고백할 수 있게 하옵소서. 우리를 살리시려 십자가를 지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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