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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할 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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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May 02, 2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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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할 일

안석수목사

*본문/ 12:20-23

 

발질이 닿는 동네마다 집이 없는 곳은 없습니다. 보이는 것이 온통 집이요

아파트이긴 하지만 그러나 막상 집을 사거나 전세를 얻으려 할 경우, 그 많은 집들 중에서 어느 집이 매물인지 우리는 알지 못합니다. 그렇다고 집집마다 문을 두드리면서 묻는 수고를 하고 다닐 필요는 없습니다. 왜냐고요? 이런 경우를 위하여 부동산 중개업자들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을 찾아가면 어느 집이 나와 있는 지, 내 형편에 맞는 집은 어떤 집인지 일목요연하게 알 수 있습니다. 부동산을 사고팔거나 혹은 전월세를 얻거나 내놓아야 하는 실 수요자 입장에서 볼 떼, 부동산 중개자란 부당하게 투기만 조성하지 않는다면 참으로 필요한 존재요, 소중한 존재가 아닐 수 없습니다.

 

거리거리마다 사람이 없는 곳이 없습니다. 가는 곳마다 인파가 넘쳐납니다. 일생 중에, 단 한 사람과도 마주치지 않는 날이란 있을 수 없을 정도로 수없이 많은 사람들 속에서 우리들은 살아갑니다. 그렇다고 해서 그 수많은 사람 사람들을 개별적으로 다 알고 살아가는 것은 아닙니다. 그 중에 여러분은 과연 몇 사람을 알고 지낸다고 말할 수 있습니까? 몇 십 명 혹은 몇 백 명을 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 가운데서도 정말 격의 없이 서로 모든 것을 털어놓으며, 상대의 일을 자기 일처럼 봐 주면서 함께 기뻐하고 함께 슬퍼할 수 있는 사람이란 고작 몇 명에 불과하지 않겠습니까?

그렇지만 우리가 알고 있는 소수의 사람들과 관계를 맺음으로만 이 세상을 살아갈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때로 우리들에겐 우리들이 추진하고 있는 일이나 계획의 성사를 위해, 또 필요한 도움을 얻기 위해, 이제껏 개인적인 사귐이 전혀 없었던 사람을 만나야 할 경우가 생깁니다. 그때 당사자에게 불쑥 전화를 걸어 만나자거나, 무조건 그 집을 찾아가 초인종을 누르는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당사자의 영향력이 크고 지위가 높으면 높을수록 그런 방법으로는, 만나기는커녕 전화로 통화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래서 이 경우 사람들은 그 당사자를 소개시켜 줄 수 있는 사람을 찾게 됩니다.

그러나 아무나 소개인으로 삼는 것은 아닙니다. 소개인으로 삼기 위해서는 몇 가지 조건이 충족되어야 합니다. 신뢰하지 않는 사람의 소개는 받지도 않으려니와 설령 만나게 된다고 해도 부정적인 결과로 끝날 공산이 더 큽니다.

그 다음으로는, 남의 부탁을 기꺼이 자기 일처럼 들어줄 수 있는 사람이어야만 합니다. 상대방이 신뢰하는 사람이긴 하지만 그러나 남의 일이라면, 그것이 아무리 정당하고 의로운 일일이지라도 손톱 하나 까딱하지 않는 사람이라면 소개인으로 부적합합니다.

 

오늘 본문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12:20 -“명절에 예배하러 올라온 사람 중에 헬라인 몇이 있는데

주전 336년 헬라인 알렉산더 대왕에게 정복당했던 이스라엘은 로마에 재정복되기까지 오랫동안 헬라의 영향 아래에 있었던 까닭에, 이스라엘 전역에는 예수님 당시까지도 헬라인들이 흩어져 살고 있습니다. 그 헬라인 중 몇 명이 유월절을 맞아 유대인들이 북새통을 이루는 예루살렘에 와 있었습니다.

그들은 그 곳에서 뜻밖에도 놀라운 광경을 목격하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귀 새끼를 타고 예루살렘으로 입성하시는데, 온 유대인들이 뛰쳐나가 종려나무 가지를 흔들면서 이스라엘 왕이시여, 호산나하며 열광적으로 예수님을 환영하는 광경이었습니다. 그 놀라운 현장을 목격한 헬라인들은 예수님을 직접 만나 뵙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그들과 예수님 사이에는, 아무런 연이 없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종교적으로 헬라인 같은 이방인들을 사람으로 취급하지 않았습니다. 따라서 헬라인들이 예수님을 만나 뵙고 싶다고 해서 아무 때나 예수님 앞에 불쑥 나설 처지는 아니었습니다.

본문 12:21 -“저희가 갈릴리 벳세다 사람 빌립에게 가서 청하여 가로되 선생이여, 우리가 예수를 뵈옵고자 하나이다.’ 하니

그들은 빌립을 찾아가 예수님을 만나도록 주선해 주기를 청했습니다. 청했다는 단어는 간청했다는 의미입니다. 예수님께는 빌립을 제외하고도 열 한명의 제자가 더 있었습니다. 그들 모두 예수님으로부터 신뢰를 받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왜 유독 헬라인들은 빌립에게 소개인이 되기를 부탁했을까요?

빌립은 자기 친구 나다나엘을 예수님께 인도하여 소개시키려 했습니다. 빌립은, 나다나엘이 원하기도 전에 스스로 나다나엘을 위한 소개인이 되기를 자청했던 사람이었습니다. 그만큼 빌립은 사람에 대한 사랑이 있었습니다. 남의 일을 자기 일처럼 생각하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그와 같은 빌립을 찾아, 유대인들이 사람으로 여기지 않는 이방 헬라인들이 소개를 부탁한 것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본문 12:22 -“빌립이 안드레에게 가서 말하고, 안드레와 빌립이 예수께 가서 여짜오대

빌립은 헬라인들의 청을 거절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유대인이 아닌 이방 헬라인들을 선뜻 예수님 앞으로 인도할 수는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지체없이 안드레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렇다면 빌립은 왜 안드레를 찾아가서 도움을 요청했을까요?

4복음서를 통틀어 볼 때, 안드레는 예수님을 만난 첫 번째 제자였습니다. 예수님을 만난 안드레 또한 가만히 있지를 못해 즉시로 그의 형 베드로를 예수님께로 인도하였습니다. 안드레 또한 사람을 사랑하는 마음, 남의 일을 자기 일처럼 여기는 마음이 있었습니다. 바로 이런 면에서 안드레는 빌립과 동일했습니다. 아니 이런 면에서 안드레는 빌립보다 월등했음을 성경을 통해서 알 수 있습니다.

 

요한복음 6에는 오병이어의 기적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때,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어떻게 했으면 좋겠느냐고 물으셨습니다. 빌립은 이런 상황 속에서는 사람들을 돌려보내는 것 외에는 달리 방도가 없지 않겠느냐고 답했습니다.

그러나 안드레는 달랐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안드레는 곧장 일어나 사람들 속을 누비고 다녔습니다. 누가 먹을 것을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를 살펴보기 위함이었습니다. 마침내 그는 떡 다섯 조각과 생선 두 토막을 지닌 어린아이를 발견하고는 그 아이를 설득하여 예수님 앞으로 데리고 왔습니다. 사람들 보기에 그것은 참으로 쓸데없는 짓일 수 있었으나 그러나 사람을 사랑하는 안드레로서는, 그런 일이라도 하지 않고는 견딜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떡 다섯 조각과 생선 두 토막으로 그 곳에 있는 수많은 무리를 다 배불리 먹이고도 남은 음식이 열 두광주리나 거두는 오병이어의 기적을 일으키셨습니다. 남의 일을 자기 일처럼 여기는 안드레가 없었던들 오늘까지 그리스도인들은 위대한 오병이어의 능력을 알지도 경험하지도 뿐만 아니라 사람을 사랑하고 돕는데 안드레는 빌립보다 확실히 한 수 위였습니다. 그래서 빌립은 헬라인들의 부탁을 받자마자 안드레를 찾아가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안드레라면, 설령 이방인을 데리고 왔다고 예수님께 꾸중을 듣는 한이 있을지라도 기꺼이 자기와 함께 헬라인들을 예수님께 소개해 주는 가교 역할을 해 주리라 믿었던 것입니다. 아니나 다를까 안드레와 빌립은 이방 헬라인들을 예수님께로 인도하는 소개인, 중개자 역할을 기꺼이 감당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승천 후 제자들이 복음을 들고 이방 지역으로 들어가기도 전에, 이방인들이 예수님으로부터 직접 복음을 듣는 구원의 대역사가 일어날 수 있었습니다.

이방 헬라인들이 예수님을 만나 뵙기 위해 먼저 빌립을 찾고, 그 부탁을 받은 빌립은 지체 없이 안드레를 찾았다는 것은, 그 두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의 신뢰를 받았던 사람들일 뿐만 아니라 사람을 사랑하고 생각하는 마음이 남달라서, 사람을 살리고 구원하는 일이라면 남의 일을 자기 일처럼 여기고 행하는 사람이란 평가가 이미 널리 퍼져 있음을 의미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 사실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다는 것은, 하나님께서도 같은 평가를 해 주셨다는 증거가 되는 것입니다.

 

이 세상에 태어난 사람은 누구나 사람들로부터 평가를 받게 마련이고, 또 하나님으로부터도 평가를 받아야만 합니다. 그리스도인들이 그리스도인으로서 받아야 할 가장 명예로운 평가가 무엇이겠습니까?

첫 번째는 예수님으로부터 신뢰를 받고 있다는 평가일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도 그가 따르는 예수님으로부터 신뢰를 받지 못한다면 그보다 더 서글픈 그리스도인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가 행하는 모든 일을 통해, 그의 언행을 통해, 그를 깊이 신뢰하시는 하나님을 볼 수 있다는 것보다 더 명예로운 평가는 없을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이 받아야 할 두 번째 명예로운 평가는 사람을 살리고 구원하는데 앞장서는 사람이란 평가일 것입니다.

제자들이 하나님의 일이 무엇이며 또 하나님의 뜻은 무엇인지를 물었을 때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일은 진리요 생명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하는 것이요, 하나님의 뜻은 마지막 한 사람가지 다 살려 구원하는 것이라 대답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을 살리고 구원하는데 앞장 서는 사람이란 평가는, 그리스도인이라면 반드시 받아야 할 평가입니다. 바로 그 사람이 하나님의 일을 행하는 사람이요,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시간에 우리들 자신을 살펴보십시다. 우리들은 지금 과연 어떤 평가를 받고 있습니까? 저 사람은 하나님이 신뢰하시는 사람이 분명하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까? 저 사람은 사람을 살리기 위해 살아간다는 평가를 받고 있습니까? 그러나 이제까지의 평가가 어떠하든 간에, 교만해져서는 안 되며, 반대로 낙담할 필요도 없습니다. 계속해서 혹은 지금부터 겸손하게 안드레처럼, 빌립처럼, 살아가는 것이 중요합니다.

 

사람의 손목을 이끌고 교회로 인도하여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해 줄 수도 있습니다. 성경을 읽게 함으로 말씀을 통해 예수님을 소개시킬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삶을 통해 예수님을 소개하고 보여 주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들이 나다나엘처럼, 아르메니아에서 선교하다가 십자가에 거꾸로 매달려 순교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나다나엘과 예수님의 만남을 주선했던 빌립이 될 수는 있습니다. 우리들이 다 베드로 같은 위대한 사도가 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베드로와 예수님의 만남을 주선했던 안드레가 될 수는 있습니다.

우리 자신의 손으로 오병이어의 역사를 일으킬 수는 없지만, 예수님과 사람들의 만남을 중개함으로 오병이어의 불씨는 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의 생이 아무리 보잘것없고 우리들의 삶이 아무리 연약하다 할지라도 우리들은 반드시 이 세상에 영향을 비칠 수가 있음을 깨달으시기를 바랍니다.

가정을 지키는 전업주부라 할지라도, 일터에 앉아 있는 직원이라 할지라도, 우리들은 반드시 이 세상의 역사를 바꿀 수가 있습니다. 안드레와 빌립이 했기 때문에 우리들도 할 수 있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들과 함께 계시기 때문에 우리들도 할 수 있음을 확신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祈禱)

하나님 아버지, 우리 자신이 나다나엘이 될 수는 없지만, 우리 자신이 베드로가 될 수는 없지만, 그러나 그들과 예수님과의 만남을 주선했던 빌립이 될 수 있으며, 안드레가 될 수 있음을 깨닫게 하여 주심을 감사드립니다. 비록 우리들 삶의 겉모양이 보잘것없다 할지라도 그 삶의 가치를 다시 일깨워 주시고, 이 시간 이후로 빌립과 안드레를 닮는 사람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예수님을 위한 중개의 삶을 기꺼이 살아갈 때에, 우리의 삶이 아무리 작고 보잘것없다 할지라도,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우리를 통해 세계 역사의 한 부분을 새롭게 하심을 확신하는 믿음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 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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