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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신비스런 선택

  • 총회자료실
  • 관리자
  • Mar 30, 2018
  • 조회 6528

신비스런 선택

 안석수목사

*본문/ 10:39-41

 

자동차를 타고 가다가 갑자기 비가 내릴 경우에 대비하여 차 안에 우산을 비치한다는 것을 오래전부터 생각은 하면서도, 막상 자동차를 탈 때는 매번 잊어버리곤 했습니다. 그러다가 얼마 전에 자동차를 타고 부산에 다녀올 일이 있었습니다. 부산 용두산공원 공영주차장에 차를 세워 놓고 광복동을 걸어가는데 마침 비가 내렸습니다. 근처 편의점으로 들어갔더니, 진열대에 우산이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그중에 진청색 우산을 하나 선택하였습니다. 그 우산을 쓰고 볼일을 끝낸 다음 자동차를 타면서 우산을 트렁크에 넣는 순간 신비스러운 생각이 저를 사로잡았습니다. 제 거주지는 부산이 아닌 포항에 살고 있습니다. 그런데도 포항에 사는 제가 자동차에 비치하기 위하여 선택한 우산은, 포항에서 백십여 킬로미터 떨어져 있는 부산 남포동의 한 편의점에 진열되어 있던 우산이었습니다.

제가 자동차 안에 우산을 비치해 두려고 생각했던 오래전부터였습니다. 만약 제가 자동차를 탈 때마다 그 생각을 매번 잊지 않았더라면, 저는 분명 사는 포항시내 어디에선가 우산을 구입했을 것입니다. 제가 오래전에 부산에 갔더라도 만약 그날 비가 오지 않았더라면 부산에서 우산을 구입할 이유는 없었을 것입니다. 그날 부산에 비가 왔더라도, 제가 광복동을 걸어갈 때 비가 않왔더라면, 저는 부산에 있는 다른 곳에서 우산을 구입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바로 그날 광복동 그 편의점 앞을 지날 때 비가 쏟아졌기에 바로 그 편의점에서, 그 우산을 선택하여 그 우산과 함께 포항에 왔습니다. 그리고 그 우산은 수명이 다할 때까지 저와 함께 포항에서 살아갈 것입니다. 우리나라 전역의 점포마다 얼마나 많은 우산이 진열되어 있습니까? 그런데 포항에 사는 제가 포항에서 타는 자동차에 비치하기 위해 선택한 우산은, 엉뚱하게도 부산 광복동의 편의점에 진열되어 있는 우산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얼마나 신비스러운 선택입니까?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 일어나는 선택도 생각하면 할수록 이렇듯 신비스럽다면, 하물며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선택은 얼마나 신비스러울까요?

 

이방인 고넬료 일행에게 전파된 복음은 갈릴리에서 시작되었으며, 복음의 주체이신 예수님은 성령과 능력을 기름 붓듯 하시는 하나님의 은혜 속에서 시혜자와 치유자의 삶을 사셨고, 유대인인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 죽였으나 하나님께서 다시 사리셨음을 사도 베드로는 증언하였습니다.

본문 39-41입니다

우리는 유다인의 땅과 예루살렘에서 그가 행하신 모든 일에 증인이며 그를 그들이 나무에 달아 죽였으나 하나님이 사흘 만에 다시 살리사 나타내시되 모든 백성에게 하신 것이 아니요 오로지 미리 택하신 증인 곧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신 후 그를 모시고 음식을 먹은 우리에게 하신 것이라.”

사도 베드로의 표현대로 오직 택하신 우리”, 즉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부활하신 예수님을 먼저 보여 주셨습니다. 더욱이 부활하신 예수님을 모시고 식사까지 한 사람은 열한 명의 제자밖에 없었습니다. 그들이야말로 특별히 선택 받은 사람들이 아닐 수 없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서 자신을 포함한 제자들을 선택하셨음을 강조하였습니다. 우리말 택하다로 번역된 헬라어 동사 케이로토네오손을 내밀어 지정하여 택하다라는 의미입니다. 어쩌다가 손에 걸린 것을 택하는 것이 아니라, 많은 것 가운데 특별히 손으로 지정하여 선택해 낸다는 말입니다. 제가 광복동 편의점에 진열된 우산 중에서 진청색 우산을 손 내밀어 선택했듯이, 주님께서 손을 내밀어 베드로를 지목하여 선택하신 것입니다.

 

마태복음은 예수님께서 베드로를 선택하시는 장면을 이렇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갈릴리 해변에 다니시다가 두 형제 곧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베드레가 바다에 그를 던지는 것을 보시니 그들은 어부라 말씀하시되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4:18-19)

남북의 길이 21킬로미터에 동서의 길이 12킬로미터 가량인 갈릴리 호수 주위에 살고 있는 남자들은 거의 모두 어부였습니다. 말하자면 갈릴리는 온통 어부 천지였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그날 그 많은 갈릴리 어부들 가운데에서 유독 베드로 형제를 미리 지명하여 택하시고 그들을 부르셨습니다.

 

누가복음의 기록을 보면 휠씬 더 상세합니다. 그날 거대한 무리가 예수님께 몰려왔습니다. 그 무리 중에서 시몬 즉 베드로는 결코 돋보이는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베드로는 밤이 새도록 고기잡이에서 완전히 실패한, 가장 초라하고 볼폼 없는 몰골이었습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는 그날 그곳에 모인 거대한 무리들 가운데서 가장 초라한 실패자 베드로에게 기적을 베풀면서 그를 지목하여 선택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와 더물어 3년 동안 함께 하시며 그를 제자로 키우셨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매사에 제자답지 못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는 그 결정적인 순간에는 도리어 예수님을 외면하고 도망쳐버린 믿을 수 없는 인간이었습니다. 이 세상 그 누구도 믿을 수 없는 인간을 자기 제자를 삼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것은 자기 자신을 욕보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수많은 사람들 가운데 가장 초라하고 볼폼 없던 베드로가 예수님의 제자로 특별히 선택된 동기나 이유는 전혀 베드로에게 있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오직 예수님에 의한, 예수님의 절대적인 선택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그것은 인간의 상식이나 논리로는 결코 설명할 수 없는 주님의 신비스러운 일방적인 선택이었습니다. 특히 저는 부산 광복동의 편의점에서 제일 좋은 우산을 선택한 반면에 주님께서는 인간 중에 가장 볼폼 없는 베드로를 선택하셨음을 감안 한다면, 그 선택의 신비스러움은 도저히 그 깊이를 측량할 수 없습니다.

 

주님께서 욥바에 있던 베드로로 하여금 일면식도 없던 가이사랴의 이방인 고넬료를 찾아가도록 신묘막측하게 역사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이스라엘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왜 하필이면 그들일까요? 다른 사람들은 다 제쳐 놓고 왜 유대인도 아닌 이방인인 그들이 선택을 받았을까요? 거기엔 가 있을 수 없습니다. 그것은 주님의 절대적이고도 신비스러운 일방적인 선택이기 때문입니다. 이 사실을 이방인인 고넬료 일행에게 일깨워 주기 위해, 비드로는 그들 앞에서 오직 미리 택하신 우리를 강조하였습니다.

오늘 우리가 어떻게 사역자로 이 자리에 나와 있을 수 있었을까요? 주님께서 갈릴리의 베드로에게 미리 선택하신 것처럼, 주님께서 가이사야의 이방인 고넬료 일행을 미리 선택하신 것처럼, 손을 내밀어 우리 각 사람들을 미리 지목하여 선택해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 땅 위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런데도 주님께서는 왜 보잘것없는 우리에게 먼저 선택의 손을 내미시어 부활의 주님을 믿게 하셨을까요? 그 해답은 우리에게는 없습니다. 그 해답은 우리에게 신비의 손길을 내밀어 주신 주님께만 있습니다.

이런 관점에서 본문을 다시 보면, 본문은 단순히 베드로만의 고백이 아니라 가이사야 이방인 고넬료 일행의 고백인 동시에 우리 자신의 고백임을 고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다시 말해 베드로가 오직 미리 택하신 우리라고 고백한 우리 속에는, 2천 년 전 베드로와 고넬료 일행, 그리고 21세기를 살고 있는 우리 자신이 모두 포함되어 있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주님의 신비스러운 선택을 받고 오직 미리 택하신 증인이라는 자기 정체성을 지니고, 초지일관 주님의 증인으로 일평생을 살았습니다. 그렇다면 베드로보다 훨씬 흉측한 삶을 살아온 우리는 주님의 신비스러운 선택에 더 감격하며, 더더욱 주님의 증인된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선택을 받았다는 것은 죄의 형벌로부터 구원을, 사역자로의 사명을 받았음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부산 광복동의 편의점에 진열되어 있던 진청색 우산을 선택한 것은 자동차에 고이 모셔만 두거나, 혹은 집안의 장식품으로 진열하기 위함이 아닙니다. 비가 오는 날 우산으로 사용하기 위함입니다. 만약 비가 오는데도 그 우산이 우산으로서의 기능을 다하지 못한다면, 저는 조금도 주저하지 않고 그 우산을 버릴 것입니다. 그러므로 제가 선택한 우산이 우산다움을 잃지 않는 것은 저를 위해서가 아니라 우산 그 자체를 위함입니다.

이처럼 우리가 주님을 알기도 전에 주님께서 우리에게 손을 내밀어 우리를 증인으로 미리 선택해 주신 것은 주님을 위함이 아니라, 우리 자신을 위해서임을 잊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영원하신 주님의 증인으로 산다는 것은, 한 줌의 흙으로 끔날 우리의 인생을 영원에 접붙이는 것을 의미하므로 그보다 더 우리 자신의 의미와 가치를 극대화하는 길은 없습니다.

 

본문 속 베드로를 보십시오. 그가 주님의 신비로운 선택을 받고서도 감격만 할 뿐 주님의 제자로서의 살지는 않는다면, 그는 2천 년 전 갈릴리에서 이미 한 줌의 흙으로 형체도 없이 사라져 버렸을 것이요, 우리가 그를 기억하거나 흠모할 이유가 전혀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을 지목하여 선택해 주신 주님의 신비스러운 은총에 제자로서의 삶으로 응답했기에, 그는 예수님 안에서 인류의 역사를 새롭게 하는 위대한 사도 베드로가 되었습니다. 갈릴리의 무식하고 초라하기만 했던 어부 베드로에게 그보다 더 자신의 가치를 극대화하는 길은 어디에도 있을 수 없음을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이 사실을 믿고 사역자로서의 삶을 살기만 하면, 우리 역시 예수님 안에서 반드시 이 세상을 새롭게 하는 이 시대의 베드로가 될 것입니다.

 

祈禱)

하나님 아버지, 우리가 시장에서 고르는 물건 하나도, 따지고 보면 예사롭지 않음을 알게 됩니다. 하필이면 바로 그날, 바로 그 시간에, 바로 그곳에서, 많고 많은 물건 중에서 그 물건을 택했다는 것 자체가 신비스러운 선택일 것입니다. 이처럼 하찮은 물건 하나 고르는 것도 신비스러운 선택이라면, 우리가 하나님을 알기도 전에 하나님께서 먼저 손을 내밀어 우리를 하나님의 증인으로 주목하여 선택해 주신 그 신비스러운 은총을 우리가 깨닫게 하여 주옵소서. 이제부터 사역자로 살아가는 우리로 인해, 삶에 지치고 절망에 빠진 사람들이 소망을 얻게 하옵소서. 사역자로 살아가는 우리로 인해 이 어두운 세상에 생명의 빛이 임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우리 모두 주님 안에서 이 세상을 새롭게 하는 이 시대의 베드로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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