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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살아 있는 믿음

  • 총회자료실
  • 관리자
  • Jan 30, 2018
  • 조회 7982

살아 있는 믿음

  안석수

*본문/ 12:6-12

 

믿음은 하나님에 대한 앎 그 자체가 아니라, 그 앎이 삶으로 이어지는 전 과정이 믿음입니다. 믿음은 머릿속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삶으로 드러난다는 말입니다. 그래서 믿음은 점이 아니라 선입니다. 믿음과 삶은 불가분의 관계에 있고, 삶이 점이 아니라 선이기에 삶으로 드러나는 믿음도 점이 아닌 선일 수밖에 없습니다. 만약 누군가의 믿음이 선이 아니라 서로 무관한 점들로 분리되어 있다면, 그 믿음은 성장이나 성숙과는 거리가 멀 것이기에 실은 죽은 믿음과 다를 바가 없습니다.

 

다윗이 오직 믿음으로 골리앗을 죽이고 이스라엘의 구국의 영웅이 되었습니다. 이 다윗의 인기가 하늘을 찌를 듯하자, 이에 질투심을 느낀 사울 왕이 다윗을 죽이려 무려 3천 명의 특공대를 구성하기까지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경내에서는 더 이상 자신의 생명을 지킬 수 없게 된 다윗은 어쩔 수없이 가드 왕 아비멜렉을 찾아갔지만, 그곳에서도 그의 생명이 위태롭기는 마찬가지였습니다. 다윗은 침을 질질 흘리며 미친 사람 시늉을 하고서야 겨우 사지를 벗어날 수 있었습니다. 바로 그 직후에 다윗이 지은 시가 시편 34입니다.

다윗의 목숨이 그토록 위태로웠던 것은 다윗이 오직 하나님의 뜻을 좇아 살았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시편 34은 하나님에 대한 다윗의 원망으로 가득 차 있어야 했습니다. 하나님 하나님의 뜻을 따르는 나를 왜 버리십니까?

이런 곤욕을 당하게 하시려고 나로 하여금 골리앗을 물리치게 하셨습니까? 하나님은 정말 살아 계십니까?“ 이런 식으로 하나님께 원망과 불평을 쏟아 놓아야 마땅할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절박한 상황 속에서 뜻밖에도 이렇게 고백하였습니다. 34:10 말씀입니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사람은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젊은 사자가 사냥을 하지 못해 주리는 경우란 흔치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젊은 사자는 혹 그런 경우가 있을지라도,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에게는 언제나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있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다윗이 침을 질질 흘리며 미친 시늉을 하지 않고서는 생존이 불가능한 상황에서 이런 고백을 했다는 것은 믿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러나 34 전체를 살펴보면, 다윗이 어떤 상황에서 그런 고백을 할 수 있었는지를 알게 됩니다.

344 말씀입니다.

내가 여호와께 간구하매 내게 응답하시고 내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가

8말씀입니다.

이 곤고한 사람이 부르짖으매 여호와께서 들으시고 그의 모든 환난에서

구원하셨도다.

79 말씀입니다.

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사람을 둘러 진 치고 그들을 건지시는도다.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와하라 그를 경외하는 사람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다윗은 먼저 과거에 자신의 기도에 응답하시고, 자신을 모든 두려움과 환난에서 구원해 주셨던 하나님을 기억했습니다. 과거에 대한 다윗의 신앙고백은 과거로 머물지 않고 현재로 이어졌습니다. 과거에 자신과 함께해 주셨던 하나님이시기에 비록 바신이 침을 질질 흘리며 미친 사람 시늉을 하지 않고서는 살 수 없는 절체절명의 위기에 처해 있지만, 그러나 하나님께서 지금도 자신을 현재형으로 건져 주시며, 또 부족함이 없는 은혜로 여전히 자신과 함께 하심을 믿었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을 믿는 다윗에게 과거와 현재 그리고 미래는 각각 무관한 점으로 분리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서로 연결된 연속선을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침을 질질 흘리며 미친 시람 시늉을 하지 않고서는 살 수 없는 절망적인 상황 속에서도 다윗은 그 믿음의 연속선 위에서 하나님께 현재형으로 자신을 구원해 주심을 믿었고, 또 하나님께서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도록 책임져 주실 자신의 미래를 확신하는 성숙한 믿음을 지닐 수 있었습니다. 다윗은 정녕 살아있는 믿음의 소유자였고, 하나님께서는 믿음의 연속선 위에서 살아 있는 믿음을 지녔던 다윗을 통해 이스라엘의 역사를 새롭게 하셨습니다.

다윗이 그런 믿음의 소유자가 아니었다면 3천 년이 지난 이 시간까지 살아 있는 믿음의 본으로 세워지지 못했을 것이요, 또 오늘날 이스라엘 국기에 그려진 이스라엘의 별로 영원히 기려지지도 못했을 것입니다. 이와 같은 관점에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오늘의 본문을 통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메시지를 찾아 낼 수 있습니다.

너희에게 내가 누구냐?”는 예수님의 질문에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오 살아 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라고 대답할 때, 베드로의 믿음은 절정에 이른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최후의 만찬을 마친 후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그들이 곧 주님을 버릴 것임을 밝히셨습니다. 예수님의 그 말씀에, 모든 사람이 다 예수님을 버릴지라도 자신만은 결코 주님을 버리지 않으리라 호언장담하던 베드로는 대단한 신앙의 소유자인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러나 그날 밤 자신의 예상과 달리 예수님께서 무기력하게 대제사장의 집으로 끌려가시자, 예수님께서 보시는 앞에서 예수님을 세 번씩이나 모른다고 부인하던 베드로는 주님과는 전혀 무관 인간이었습니다. 그가 새벽 닭 울음소리에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며 통곡할 때, 그는 잃었던 믿음을 회복한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는 결정적인 순간에 예수님을 버리고 도망쳐 버린 베드로는 누가 뭐래도 믿음의 사람일 수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본문의 베드로는 더 이상 예전의 베드로가 아니었습니다. 그가 투옥된 것은 형기가 정해진 형을 살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무교절이 끝나기까지 기다렸다가 참수형을 당해 죽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러므로 그가 투옥되어 있던 이레 동안은 매 순간 순간이 피를 말리는 고통의 시간일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참수형을 당하기 전날 밤 마지막 순간이 되기까지 그의 믿음은 진정 살아 있는 믿음이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렇듯 살아 있는 믿음의 연속선 위에 있는 베드로를 구출해 내시고, 그를 도구 삼아 인류의 역사를 새롭게 하셨습니다.

 

노아는 하나님의 명령을 좇아 방주를 짓기 시작했습니다. 그것은 1-2년 뒤에 완성되는 일이 아니었습니다. 수많은 세월 동안 노아는 자신의 전 재산을 투입하여 방주를 지었었습니다. 멀쩡한 날씨에 하고한 날 방주만 짓는 노아를 주위 사람들은 비웃기만 했습니다. 마침내 방주가 완성되고, 노아 식구는 방주 속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렇다면 그 즉시 하나님께서 예고하신 인류 심판의 대홍수가 시작되어야 마땅할 것입니다. 그러나 하늘에는 태양이 작열할 뿐, 비가 내릴 기미는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하루 이틀 사흘이 지나도 하늘은 멀쩡하기만 했습니다. 나흘, 닷새가 지나도 그 어떤 변화의 조짐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계시지 않는 것은 아닐까? 우리라면 이렇게 극도로 불신과 불안에 사로잡혀 믿음으로 지은 방주를 뛰쳐나와 버렸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노아는 전혀 흔들리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레가 지난 뒤 하늘이 열리고 깊은 샘들이 터지며 인류 심판의 대홍수가 시작되었습니다. 왜 하나님께서는 노아 가족이 방주에 들어가는 즉시 비가 쏟아지게 하시지 않았을까요? 노아 가족으로 하여금 하염없이 이레씩이나 방주 속에서 기다리게 하신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 역시 노아의 믿음이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연속선으로 이어지는 믿음이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연속선을 이루는 살아 있는 믿음을 지녔던 노아가 그 믿음의 연속선 위에서 하나님에 의해 인류의 두 번째 시조가 된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살아 있는 믿음은 점이 아니라 선이고,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을 믿는 인간의 믿음의 연속선 위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백지 위에 아무리 수많은 점들을 찍어도 그 자체만으로는 언제까지든 무의미한 점들일 뿐이지만, 그 점들이 서로 이어질 때 그 점들은 더 이상 무의미한 점들이 아니라 비로소 선으로 살아 움직이게 됩니다. 우리가 일평생 수많은 믿음의 행위를 행한다 해도 그 행위들이 불연속적인 점들에 지나지 않는다면, 우리의 믿음은 성장할 수도 없고 성숙할 수도 없습니다. 연속성이 없는 점들로 분리된 믿음은 생명을 지닐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살아 있는 사람에게 시간은 점이 아니라 선이듯이, 살아 있는 사람의 삶이 점이 아니라 선이듯이 살아 있는 믿음 역시 점이 아니라 선입니다.

언제 어디서든, 또 어떤 경우에든, 우리의 생명이 끝나기까지, 우리의 믿음이 과거에서 현재를 거쳐 미래로 이어지는 살아 있는 연속선이 되게 하시기 바랍니다. 그때 우리 자신은 비록 보잘것없을지라도, 우리는 그 믿음의 연속선 위에서 이 세상을 새롭게 하는 이 시대의 노아, 이 세상을 살리는 이 시대의 다윗, 이 세상을 밝히는 이 시대의 베드로가 될 수 있습니다.

살아 있는 믿음은 점이 아니라 선이고,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믿음의 연속선 위에서 하나님의 섭리를 이루시기 때문입니다.

 

祈禱)

하나님 아버지, 그동안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의 수많은 믿음의 행위들을 행해 왔지만, 그 모든 행위들은, 그 행위 뒤에 따르는 불신의 삶으로 인해 불연속적인 점들로 분리되고 말았습니다. 그 결과 연속선으로 이어지지 못한 우리의 믿음은 성장하지도 성숙하지도 못한 채,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늘 제자리만 맴돌 뿐이었습니다. 이제부터 하나님의 사랑의 연속선에 우리 믿음의 연속선으로 응답 드리기를 원합니다. 믿음은 점이 아니라 선임을 항상 잊지 말게 도와주옵소서. 언제 어디서든, 또 어떤 경우에든, 우리가 살이 있는 한, 살아 있는 믿음의 연속선이 되게 해 주시고, 그 믿음의 연속선 위에서, 우리 자신과 이 시대를 위한 하나님의 섭리가 우리의 삶을 통해 이루어지게 해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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