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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별된 거룩한 교회

  • 총회자료실
  • 관리자
  • May 02, 2019
  • 조회 22

구별된 거룩한 교회

안석수목사

*본문/ 21:20-26

 

율법에는 두 측면이 있습니다. 첫 번째는 구원과 관련된 측면입니다. 유대인들은 율법을 지켜야 구원을 받는다고 믿었습니다. 율법이 구원의 조건인 셈입니다. 하지만 죗성을 지니고 태어난 인간은 누구도 자신의 의지나 능력으로는 율법을 온전히 지킬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구원의 조건으로서의 율법은 단호히 거부하였습니다. 오직 주님의 은혜로 거저 주어지는 구원에는, 그 어떤 조건도 전제될 수 없었습니다. 율법은, 주님의 은혜로 이미 구원받은 바울에게는 좋은 삶의 지침서일 뿐이었습니다. 율법의 두 번째 측면은 유대인의 전통 및 관습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유대인의 전통과 관습의 출처가 모두 율법이었습니다. 유대인이었던 바울 역시 조상 대대로 내려온 전통과 관습을 존중하였음은 물론이었습니다. 바울이 이방 지역에서 유대인의 유대인 어머니의 아들로 태어난 디모데에게 할례를 행하였던 것도, 유대인들에게 복음을 전할 디모데로 하여금 유대인의 전통과 관습을 지키게 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예루살렘에 모여든 유대 그리스도인들 사이에는, 바울이 율법의 전통과 관습을 송두리째 무시하고 유대인들마저 할례를 받지 못하게 할 뿐 아니라, 심지어 모세를 배반한 배교자란 거짓 소문이 만연해 있었습니다. 그동안 바울이 가는 곳마다 바울을 배교자로 간주하여 죽이려던 유대인들이 퍼뜨린 거짓 모함이, 유대 그리스도인들에게도 그대로 유포된 것이었습니다.

 

야고보와 예루살렘의 장로들도 이 소문을 들어 잘 알고 있었지만 그들은 다른 유대 그리스도인들과는 달리 그 소문을 믿지 않았습니다. 이 한 가지 사실로 우리는 야고보와 예루살렘 장로들의 믿음과, 예루살렘에 모인 그리스도인들의 믿음의 깊이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성숙한 믿음의 사람은, 믿어야 할 사람을 믿습니다. 야고보와 예루살렘의 장로들은 바울에 대한 몹쓸 모함 속에서도 바울을 변함없이 믿었을 뿐 아니라, 바울에게 우리가 말하는 이대로 하라며 바울이 유대 그리스도인들의 오해에서 벗어날 수 있는 구체적인 방책을 제시하였습니다.

마침 예루살렘 교회에, 일정 기간 동안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나실인 서원을 한 사람이 네 명 있었는데, 그 네 명과 함께 성전에 머물면서 그들이 결례를 행하고 머리 깎는 비용을 치러주게 했습니다. 그렇게 함으로써 유대 그리스도인들이 바울을 모세의 배반자로 여기는 그릇된 오해를 불식시킬 수 있었기 때문이었습니다. 바울은 제시한 방책을 그대로 따랐습니다.

 

여기에서 질문이 제기됩니다. 초대교회 최고 지도자였던 야고보와 위대한 사도 바울이 수만 명에 달하는 유대 그리스도인들의 여론이 무서워 신앙 양심을 버리고 마치 율법의 신봉자인 것처럼, 서로 타협한 게 아니냐는 것입니다. 바울이 대체 어떤 심정으로 예루살렘에 입성하였습니까? 바울이 고린도를 출발하여 예루살렘에 이르기까지 바울이 예루살렘에서 결박과 환난을 당할 것이라는 성령님의 거듭된 예고에 수많은 사람들이 바울의 예루살렘 행을 눈물로 만류하였습니다. 하지만 바울은 주 예수의 이름을 위하여 결박당할 뿐 아니라 예루살렘에서 죽을 것도 각오하고 예루살렘을 찾았던 것입니다. 그런 바울이, 무엇이 두려워 자기 양심을 저버리고 타협했겠습니까?

바울이 야고보와 예루살렘 장로들의 제안을 흔쾌히 받아들였던 것은, 바로 그것이 유대인의 전통과 관습에 관한 것이었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인 바울이유대인의 전통과 관습을 존중함으로써, 같은 동족인 유대인과의 접촉점을 확대할 수 있었습니다.

 

바울은 이처럼 복음 안에서 한 사람이라도 더 얻기 위해, 또 그리스도 안에서 보다 깊이 소통할 수 있게끔,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되었습니다.

상대와의 접촉점을 확대하기 위해 늘 상대에게 자신을 맞추었던 바울은, 상대에 따라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삶의 자세는 우리로 하여금 물을 연상하게 합니다. 물은 담기는 그릇의 모양에 따라 모양이 달라집니다. 그렇다고 물의 본질이 바뀌는 것은 아닙니다. 바울의 삶도 그와 같았습니다. 그리고 바울은 자신이 그리스도의 율법 아래 있는 사람임도 밝혔습니다. 바울이 언급한 그리스도의 율법은 유대인들이 금과옥조로 삼던 그들의 율법을 뜻하지 않았습니다. 그것은 주님께서 새로운 계명으로 주신, 서로 사랑하라는 사랑의 율법이었습니다.

내가 이웃을 사랑하는데, 이웃을 살인할 수는 없습니다. 내가 이웃을 사랑하는데, 이웃이 지닌 것을 훔치려 흑심을 품을 수 없습니다. 이웃을 사랑하면, 그 사랑 안에서 모든 율법은 완성됩니다. 이것이 바울이 말한 그리스도의 율법, 곧 사랑의 율법입니다.

이렇듯 사랑과 생명은 마치 물처럼, 상대로 하여금 자신에게 맞추어 줄 것을 요구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을 기꺼이 상대에게 맞추어 주기에 여러 모양을 드러나게 됩니다. 바울의 심령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는 사랑과 생명으로 가득 찼기에 언제나 상대에게 자신을 맞추었고, 그 결과 바울은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으로 살았습니다. 그래서 바울이 가는 곳마다 많은 사람을 얻은 것은 결코 우연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하지만 반드시 기억해야할 사항이 있습니다. 물이 그릇의 모양에 따라 모양이 달라지는 것은 물의 특성이지만, 그 과정에서 물의 본질이 변질되거나 썩어서는 안 됩니다. 물의 본질은 생명입니다. 생명의 본질이 변질되거나 썩은 물은 아무리 아름다운 모양의 그릇에 아름다운 모습으로 담겨 있어도, 그 물을 마시는 사람의 생명에 해를 끼치게 됩니다. 생명과 사랑으로 충만한 바울이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으로 살았지만, 그와 같은 바울의 삶이 누군가의 영적 생명을 해치는 결과를 초래할 수는 없습니다.

그래서 바울은 자신이 고기를 먹는 것이 누군가를 실족케 하는 결과를 초래한다면, 자신은 제물로 바쳐진 고기는 영원히 먹지 않겠다고 선포한 것이었습니다.

바울이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으로 산 것은 복음 안에서 한 사람이라도 더 많은 사람을 얻으려는 접촉점의 확장을 위해서였고, 영원히 고기를 먹지 않겠다고 선포한 것은 자신과 관계하는 사람의 신앙을 굳게 지켜주기 위함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는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지녀야 할 삶의 양면성을 알게 됩니다. 복음 안에서 한 사람이라도 더 얻으려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으로 살기 위한 그 마음이라면, 또 다른 면은 자기 주위 사람들의 신앙을 굳게 지켜 주기 위한 자기 절제입니다. 주위 사람들의 신앙을 지켜 주기 위해, 다시 말해 자신으로 인해 주위 사람들이 신앙적으로 실족하지 않게끔, 자신의 믿음으로는 얼마든지 할 수 있는 것이지만 그 사람들을 위해 자발적으로 절제하는 것입니다.

 

저는 어느 식사 자리에서든, 제가 술을 마시지 않는다고 그 자리에 동석한 분들의 반주까지 못하게 하지는 않습니다. 오히려 제가 따라 드리기도 합니다. 그러나 어떤 경우에도 제 입에 술을 대지 않는 것은, 그 자리에 동석한 누군가의 신앙을 굳게 지켜 드리기 위함입니다.

바울의 표현을 빌리자면, 저로 인해 신앙적으로 실족하는 사람이 없게 하기 위함입니다.

교회의 힘은 예배당의 크기나 헌금 액수가 아니라, 오직 거룩함에서 나옵니다. 오늘날 이 땅 가는 곳마다 큰 예배당이 즐비하고, 교회마다 교인수를 자랑하지만, 교회가 더 이상 세상을 새롭게 하지 못하는 것은, 교회를 이루고 있는 우리 그리스도인들의 삶이 세상 사람들과 전혀 구별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생각해 보십시다. 세상의 빛과 소금이어야 할 그리스도인들이 하고 싶은 것 다 하고, 가지고 싶은 것 다 가지고, 먹고 싶은 것 다 먹고 다니면서, 어떻게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교회를 이루어, 이 세상을 말씀대로 새롭게 할 수 있겠습니까?

바울이 목숨을 걸고 전한 복음이 로마제국을 새롭게 한 것은 당시의 그리스도인들에게 금력과 권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그들이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교회를 이루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끼리 모여, 우리끼리 은혜를 받고, 우리끼리 사랑하며, 우리끼리 잘 먹고 살기를 추구하는 교회라면, 그렇지 않아도 가는 곳마다 교회 천지인데, 세상을 말씀으로 새롭게 하시는 주님을 주인으로 모신 교회라면, 이 혼탁한 세상에서 시대적 사명과 역사의 소명을 감당하는 교회가 되어야 마땅할 것입니다.

우리에게 부여된 소명이, 한국 교회의 미래를 향한 길닦이 사명을 완수하는 것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그 사명을 품으려는 열린 마음과, 한 사람이라도 실족시키지 않으려는 자기 절제의 거룩함으로만 감당할 수 있음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 모두 복음 안에서 한 사람이라도 더 얻기 위해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으로 살아가는, 모든 사람에게 활짝 열린 마음을 지녀야 합니다. 동시에 단 한 사람이라도 실족시키지 않기 위해,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들의 믿음을 굳게 세워 주기 위해, 주님 안에서 자기 절제의 거룩함을 입어야 합니다.

비록 우리 자신은 부족하고 미천해도, 결코 짧지 않는 손을 지니신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반드시 우리들을 들어 한국 교회와 이 나라를 새롭게 해 주실 것입니다.

 

 

祈禱)

하나님 아버지, 바늘구멍처럼 편협한 우리 마음이, 주님 앞으로 나아가려는 사람들을 가로막는 장애물이었습니다. 절제해야 할 것을 절제하지 못한 우리의 삶은, 많은 사람을 신앙적으로 실족시키는 덫이었습니다. 우리로 인해 이 땅의 교회가 거룩함을 상실했고, 교회에서 퍼지는 모든 소리는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이 모든 잘못을 회개 하오니 용서해 주옵소서. 이제부터 주님 안에서 바울처럼 살게 해 주옵소서. 복음 안에서 한 사람이라도 더 얻기 위해, 여러 사람에게 여러 모습으로 살아가는 열린 마음을 지니게 하시고, 한 사람이라도 신앙적으로 실족시키는 일이 없도록, 우리 주위 사람들의 신앙을 굳게 지켜 줄 수 있도록, 날마다 주님 안에서 자기 절제의 거룩한 삶을 추구하게 해 주옵소서. 그리하여 우리의 삶 자체가 하나님의 자랑이 되게 하시고, 우리들을 통해 한국의 교회와 이 나라가 새로워지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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