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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나는 누구인가?

  • 총회자료실
  • 관리자
  • Aug 29,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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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누구인가?

  안석수 목사 

*본문/ 11:17-18

 

낮이 밤에게 밀려나 온 세상이 흑암의 천지가 되는 것은, 날이 잘못을 지었기 때문이 아닙니다. 여름 바다에 태풍이 휘몰아치는 것은, 그 바다가 하나님 앞에 범죄한 탓이 아닙니다. 가을이 되어 무성하든 나뭇잎이 낙엽으로 모두 떨어져 나무가 앙상한 가지만 남는 것은, 그 나무의 잘못으로 인함이 아닙니다. 혹한의 겨울이 찾아와 온 자연의 생명이 꽁꽁 얼어붙는 것은, 자연이 죄를 범한 까닭이 아닙니다. 그 모든 것은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피조물인 이 세상을 보존하시는 하나님의 섭리요, 법칙입니다. 우리 인생도 이와 같습니다. 우리의 인생길에는 흑암의 터널이 있는가 하면 폭풍도 있고, 모든 일이 낙엽처럼 떨어지는 가을도 있고, 또 아무것도 할 수 있는 혹한의 겨울도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의 인생을 바로 세워주고 지켜 주시는 하나님의 은총이요, 섭리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인생길을 걷는 동안 원치 않는 상황이나 뜻밖의 상황을 맞았을 때, 그 상황을 두려워하거나 근심하기 전에 그 상황에 바르게 대처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은 우리에게 주어지는 모든 상황 자체가 하나님의 섭리이기 때문입니다.

 

네덜란드의 신학자 빔 리트께르크는 그의 저서 <믿을 수만 있다면>에서 사도 바울의 예로 들어, 그리스도인들이 뜻밖의 상황을 맞았을 때, 어떻게 대처해야 항 것인지를 알려 주고 있습니다.

 

고후127에 의하면 바울에게는 육체의 가시가 있었습니다. 대부분의 주석가들은 그것을 바울이 지니고 있었을 것으로 짐작되는 질병과 연관시킵니다. 한편으로는 사도 바울이 밝힌 육체의 가시는 질병이 아니라 바울을 괴롭힌 인간관계였다고 주장하는 주석가들도 있습니다. 이를테면 바울을 끊임없이 모함하던 거짓 선지자들, 혹은 바울이 진심으로 돌보았지만 적반하장으로 바울에게 등을 돌린 사람을 가리켜 바울이 육체의 가시라고 불렀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정확하게 아는 것은 위대한 사도 바울이 자신의 인생에 박힌 가시가 제거되기를 하나님께 반복하여 간구했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인생길을 가다가 원치 않는 일이나 뜻밖의 상황을 맞았을 때, 우리는 그 상황으로부터 벗어날 수 있기를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그리고 한 번 기도하는 것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반복하여 간구해야 합니다. 기도는 하나님과 우리를 긴밀하게 연결시켜 주는 유일한 끈입니다. 그래서 우리 인생의 크고 작은 문제는 우리를 향한 하나님의 은총으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인간은 문제가 없으면, 기도하지 않기에 그만큼 하나님과 멀어질 뿐입니다. 그러나 원치 않는 상황을 만남으로 인간은 기도하게 되고, 기도하는 만큼 하나님과 더 긴밀하게 됩니다. 하나님과의 긴밀한 관계. 이 긴밀함이 중요합니다. 기도를 통해 하나님과 긴밀한 관계를 맺은 사람만 자신의 기도가 응답되어 원치 않는 상황에서 벗어나도 하나님을 외면하는 교만에 빠지지 않을 수 있고, 또 자신의 기도가 응답되지 않을 경우에도 그 다음 단계로 나아가는 성숙함을 지닐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우리로서는 사도 바울이 말한 육체의 가시가 구체적으로 무엇을 지칭하는지는 정확하게 알 수는 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사도 바울이 자신의 당면 문제를 가시라고 표현했다는 것입니다.

바울은 자기 인생의 가시가 제거되기를 간구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 가시를 제거해 주시지 않고 도리어 그 가시를 통해 바울의 삶 속으로 들어오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바울에게 그 가시를 주신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누구보다도 많은 계시와 은혜를 받은 바울이 자만심에 빠져 실족하지 않도록 배려해 주시기 위함임을 말씀하셨고, 바울은 그 말씀을 믿음으로 경청했습니다. 과연 그 말씀을 듣고 보니 그 말씀에 동의하지 않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바울은 선천성 하반신 불구자를 일으키고 죽은 사람을 살리며 귀신을 쫓는 능력의 소유자였습니다. 그가 가는 곳마다 사람들의 인생관이 바뀌고 교회가 세워졌습니다. 그 바울에게 만약 인생의 가시가 없었던들, 그는 언젠가부터 더 이상 하나님을 필요로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 정도의 능력을 지니고 살다 보면, 필경 스스로 하나님이라 착각하는 자기 교만에 빠지고 말았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다음과 같이 고백합니다. 고후 12:9-10입니다.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때에 강함이라.”

바울은 오직 주님을 따르기 위해 세상에서 당해야 하는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조금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인생의 가시로 인해 자신의 연약함을 결코 잊을 수 없었던 바울은, 자신의 연약함으로 인해 일평생 하나님의 도우심을 겸손하게 구할 수밖에 없었고, 그 결과 바울은 자신의 연약함 때문에 역설적이게도 평생 동안 하나님의 강함으로 살 수 있었습니다.

그처럼 하나님의 섭리에 대한 완전한 순종의 삶을 사는 자신을 비난하는 사람들을 향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9:20-21입니다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을 받은 물건이 지은이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토기장이가 진흙 한 덩이로 하나는 귀히 쓸 그릇을 하나는 천히 쓸 그릇을 만들 권한이 없느냐

바울은 하나님 앞에 자기 자신을 토기장이 앞에 있는 진흙에 불과함을 잊지 않았습니다. 다시 말해 하나님은 자신을 창조하신 절대주권자요, 자신은 하나님의 피조물에 지나지 않음을 잊지 않았습니다.

 

욥바의 무두장이 시몬의 집 옥상에서 기도하던 베드로가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 부정한 짐승을 잡아먹어야 하는 자신이 원치 않는 상황에 저항했습니다. 세 번씩이나 적극적으로 저항했습니다. 베드로가 주님, 그럴 수 없나이다. 속되거나 깨끗하지 아니한 것은 결코 내 입에 들어간 일이 없나이다.”하고 세 번식이나 하나님께 말씀드렸다는 것은, 그것이 기도를 통한 적극적인 저항이었음을 뜻합니다. 베드로로서는 그 부정한 짐승을 잡아 먹는 상황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원치 않는 상황에 대해 기도를 통한 적극적인 저항에만 집착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는 너를 찾아온 이방인들을 의심하지 말고 함께 가라는 성령님의 말씀을 경청했습니다.

그것은 이방인 고넬료 일행에게 구원의 복음을 전하라는 하나님의 명령이었습니다. 베드로는 그 말씀에 경청하고 묵묵히 순종했습니다.

 

베드로는 예루살렘의 할례파 유대인들에게 자신이 왜 이방인 고넬료 집을 찾아 갔는지, 왜 이방인 고넬료 일행에게 복음을 전하고 세례를 베풀었는지 그간의 일을 처음부터 차례대로 설명하면서 그 결론을 본문 17을 통해 이렇게 말했습니다. 내가 누구이기에 하나님을 능히 막겠느냐

 

지극히 짧은 문장이지만, 그러나 그것이야말로 베드로 신앙의 핵심이었습니다. 대체 베드로는 자신을 어떻게 인식하고 있었을까요? 베드로에게 하나님은 누구셨을까요? 그것은 두말할 것도 없이 자신은 진흙과 같은 피조물이요, 하나님은 토기장이처럼 자신을 만드신 창조주이심을 바르게 깨닫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베드로 역시 피조물인 자신의 정체성을 잊지 않음으로써 자신이 원치 않는 상황에 대해 기도를 통한 적극적인 저항에 집착하지 않고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말씀에 경청하는 믿음과 묵묵한 순종으로 나아감으로, 땅 끔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는 주님의 마지막 명령을 교회가 공식적으로 수행하는 혁명적인 물꼬를 튼 위대한 사도가 되었습니다.

 

갈릴리의 무식한 어부였던 베드로, 예수 그리스도의 대적이었던 바울 그들이 위대한 사도의 삶을 살 수 있었던 것은 자신들이 피조물임을 잊지 않는 믿음의 소유자들이었기 때문입니다.

 

프로 야구 엔씨 김경문 감독은 한국 시리즈 준우승 세 차례, 2008년 베이징 올림픽에서 한국 야구 사상 최초의 우승을 일구어 낸 명장입니다. 김경문 감독의 인터뷰 때, 한 말입니다.“지도자의 자기 관리는 허명을 경계하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그렇습니다. 그 허명에 빠져 허명을 탐하게 되면, 그 사람은 반드시 몰락하게 되는 것입니다. 허명이란 문자 그대로 실제보다 부풀려진 헛된 명성이기 때문입니다. 무릇 허명을 경계하고 실제의 자기 자신을 늘 바루게 갈고 닦는 사람만 자신을 지킬 수 있습니다. 신앙도 이와 똑같습니다.

 

독일의 신학자 헬무트 틸리케는 <세계를 부둥켜안은 기도>라는 책에서 나는 인간의 우상이 되기보다 예수님의 눈이 주시하는 한 마리의 벌레가 되고 싶다고백했습니다.

 

인간은 조금만 알려져도 자기 허명, 자기 교만에 빠져 하나님을 외면하고 스스로 하나님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벌레는 어떤 경우에도 자기 허명이나 자기 교만에 빠지지 않습니다. 벌레는 하나님에 의해 창조된 피조물의 자리를 결코 넘어서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틸리케는 하나님 보시는 앞에서 일평생 벌레처럼, 겸손한 피조물로 살겠다고 고백한 것입니다. 그때에만 인생을 무의미하게 낭비하지 않고,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분별하는 영원한 삶을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나는 도대체 누구입니까? 가정에서 나는 누구입니까? 일터에서 나는 누구입니까? 이 세상 속에서 나는 도대체 누구입니까?

우리는 언제 어디서나 하나님의 피조물이요, 그러므로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법칙대로 살아야 할 그리스도인임을 잊지 마십시다. 우리의 피조물 됨을 잊지 않는 한, 우리 역시 반드시 이 시대를 위한 베드로와 바울이 될 것입니다. 우리는 미약하지만,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뜻을 이루어 가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祈禱)

하나님 아버지, 이 사람아 네가 누구이기에 감히 하나님께 반문하느냐? 지음 받은 물건이 지은 이에게 어찌 나를 이같이 만들었느냐 말하겠느냐? 하나님, 바울의 이 믿음이 우리의 믿음이 되게 해 주옵소서. 그리하여 언제 어디서나 우리가 하나님의 피조물임을 기억하며 살아가게 하옵소서. 어떤 상황 속에서든 우리를 창조하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것은, 우리를 영원히 세우고 지키는 길임을 잊지 말게 해 주옵소서. 혹 원치 않는 상황이 우리를 덮칠 때, 그 상황에서 벗어나기 위해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할 줄 알게 해 주시고, 그 기도로 하나님과 날로 친밀하게 해 주옵소서. 만약 우리의 기도가 응답되지 않는다면, 더 이상 우리의 뜻을 고집할 것이 아니라 우리에게 그 상황을 주신 하나님의 섭리를 따르는 믿음을 지니게 해 주옵소서. 그리고 그 하나님의 뜻에 우리의 묵묵한 순종으로 응답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피조물인 우리의 허망한 뜻이 아니라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영원한 뜻이, 우리의 삶을 통해 날마다 이루어지게 해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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