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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기도에 힘쓰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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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관리자
  • Aug 29,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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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도에 힘쓰니라

 안석수 목사 

*본문/ 1:12-14

 

교회에서 섬김의 중요성은 새삼스럽게 강조할 필요가 없습니다만, 섬김은 마치 자전거 페달을 밟는 것과 같습니다. 누구든지 걸어가는 행인을 위해 자전거 페달을 밟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것은 자전거를 타고 있는 자신을 위한 행위입니다. 페달을 밟지 않는 한 자전거는 조금도 나아가지 않습니다. 봉사 또는 섬김의 사전적 의미는 남을 위해 노력함’ ‘국가와 사회를 위하여 헌신적으로 일함입니다. 철저하게 남을 위한 행위를 말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인의 섬김은 사전적 의미의 섬김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갑니다. 그리스도인은 주님의 말씀을 따라 다른 사람을 섬김으로써, 예수님의 생명과 사랑과 그리고 말씀의 능력을 자신의 것으로 삼을 수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그리스도인의 섬김은 다른 사람을 위한 행위이면서도, 궁극적으로 자전거의 페달처럼 자기 신앙의 성숙을 위한 필수 과정이 됩니다. 그래서 교회에서 어떤 형태의 섬김이든 섬김에 참여하는 성도의 신앙이 더 깊어지는 까닭이 여기에 있습니다. 자전거 페달을 계속 밟음으로 자전거가 바르게 서서 달릴 수 있는 것처럼, 그리스도인은 섬김을 통해 그리스도인답게 사는 법을 배우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시간 우리가 은혜로운 예배를 드릴 수 있는 것은 많은 성도들의 섬김의 결과입니다. 오늘 예배를 위해 청소를 하고 또 은혜로운 예배를 위해 이른 시간 나와서 찬양을 준비하는 성가대원 그리고 반주자 또 성도들을 위해 차량을 운행하며, 오늘 예배를 위해 기도하며 그뿐 아니라 오후에 우리들이 즐겁게 먹을 수 있는 식사준비와 상을 펴고, 음식을 나르며 설거지를 하는 등등 일일이 헤아리기 어려울 정도로 많은 분들의 섬김이 있습니다.

그 섬기는 분들이 그 섬김을 성가시게 여기기는커녕 매주일 기꺼이 반복하는 것은, 그것이 자신들의 신앙에 유익함을 이미 경험을 통해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주일예배에 참석한 그리스도인들이 어떤 형태의 섬김이든 섬김의 현장에 참여한다는 것은 그리스도인의 신앙생활에 더없이 중요하고도 유익한 일입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예배당이 그리스도인의 섬김의 종착역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다르게 말해, 그리스도인의 섬김은 교회 안에 한정되어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교회 섬김이 중요하다면 그것이 곧 그리스도인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는 출발점이기 때문입니다. 자전거를 탄 사람이 패달을 계속 밟는 것은, 새발 자전거를 탄 어린아이처럼 자기 집 앞 골목을 맴도는 것이 아니라 목적지에 이르기 위함입니다.

그리스도인의 섬김 역시 예배당 안에서만 맴돌려 함이 아니라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기에 필요한 것입니다. 안타깝게도 아쉬운 점은 그리스도인들의 섬김이 대부분 교회 섬김에 만 머문다는 것입니다. 예배당 벽을 넘지 못하는 교회 섬김만으로는 세상을 새롭게 할 수 없습니다. 세상은, 그리스도인의 교회 섬김이 교회 밖 세상에서 삶으로 이어질 때, 다시 말해 세상에서 하나님의 뜻에 따라 그리스도인의 양심을 지키며 살아갈 때 그러한 그리스도인에 의해 새로워집니다.

 

예수님께서 몸을 지닌 채 하늘로 오르시는 장면을 직접 목격한 제자들은, 예수님의 모습이 구름에 가리어 더 이상 보이지 않았지만 그 하늘에서 눈을 거두지 못했습니다. 그때 천사들이 제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하늘로 가심을 본 그대로 오실 것임을 일러 주었습니다.

 

1:12 -“제자들이 감람원이라 하는 산으로부터 예루살렘에 돌아오니 이 산은 예루살렘에서 가까워 안식일에 가기 알맞은 길이라.”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곳은 감람산이었습니다. 감람나무, 즉 올리브나무가 많은 곳이라 하여 감람산이라 불리는 장소였습니다.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모습 그대로 다시 오실 것이란 사실을 확인한 즉시 감람산을 떠나 예루살렘으로, 그들이 두 발 딛고 서 있어야 할 삶의 현장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들이 감람산에서 예수님이 승천하신 하늘을 그토록 오랫동안 우러러 봤던 것은, 삶의 현장에서 도피하여 감람산에서 즐기기 위함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에게 주어진 삶의 현장으로 돌아오기 위함이었습니다. 다시 오실 주님을 소망하며,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 위함이었습니다.

 

1:13-14 -“들어가 그들이 유하는 다락방으로 올라가니 베드로, 요한, 야고보, 안드레와 빌립, 도마와 바돌로매, 마태와 및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 셀롯인 시몬, 야고보의 아들 유다가 다 거기 있어 여자들과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와 예수의 아우들과 더불어 마음을 같이하여 오로지 기도에 힘쓰니라.”

삶의 현장으로 돌아온 제자들이 가장 먼저 한 일은 무엇이었습니까? 기도였습니다. 무엇을 위한 기도였을까요?

그때 제자들이 기도하며 힘써 구한 것은 바로 그리스도인답게 이 세상을 살아갈 힘과 용기와 지혜임이 분명합니다. 그것은 이후 그들이 죽음의 위협마저 두려워하지 않고 주님의 증인으로 생을 마감한 것을 보아 우리는 알 수 있습니다.

예수님의 제자들이 예배당 안에서 세상을 변화시킨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섬김의 삶이 예배당에 한정되어 있지 않았다는 말입니다. 그들이 예수님으로부터 3년 동안 섬김의 삶을 훈련받은 것도, 초대교회를 이루고 서로 섬김의 삶을 실천한 것도 모두 세상에서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 위함입니다. 사도행전은 교회 안에서 시작된 그리스도인의 삶이 세상으로 이어질 때, 그들을 도구 삼아 주님께서 세상을 새롭게 하셨다는 생명의 증언록입니다.

 

오늘날 우리 시대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예배당 안에 갇혀 있는 사람이 아니라, 예배당 밖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는 사람을 주님은 필요로 하십니다. 그런 사람을 통해서만 세상을 새롭게 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배당과 달리 온갖 유혹과 욕망의 법칙이 난무하는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간다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끊임없는 결단과 용기를 필요로 하기에, 기도 없이는 불가능한 것입니다. 기도만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갈 힘과 용기 그리고 지혜의 원천이 됩니다.

 

21:18 -“내가 진실로진실로 내게 이르노니 네가 젊어서는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하지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예수님은 제자들을 대표하는 베드로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스스로 띠 띠고 자기 원하는 곳을 다니고 또 원하는 것을 행하려 합니다. 그러나 나이가 많고 적음에 상관없이 누구든 자기 인생을 돌아보면, 자신이 계획한 대로 스스로 행한 일은 거의 없고, 모두 자신의 의도와 상관없이 되어 진 일들뿐임을 고백하게 됩니다. 이 사실을 분명히 깨달은 사람은 주님 앞에 두 팔을 벌리기 마련입니다. 주님께 항복하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이끄시는 대로 이끌려 가기 위함입니다. 그것이 더 이상의 인생의 낭비 없는 최선의 삶이기 때문입니다.

십자가에 못 박혀 돌아가시기 전날 밤, 예수님께서는 밤이 맞도록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셨습니다. 당시 예수님께서는 목전에 임박한 자신의 죽음을 내다보시며, 심히 고민하고 슬퍼하셨습니다. 얼마나 그 마음이 괴로우셨으면, 아예 땅바닥에 엎드린 채 얼굴을 땅에 대고 기도하셨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피하기 위함이었습니다. 그 기도가 얼마나 애절했던지, 예수님의 얼굴에서 흐르는 땀에 피가 베어날 정도였습니다. 그러나 그 기도의 결과로 예수님께서 얻으신 응답이 무엇입니까? 십자가의 죽음의 모면이었습니까? 아닙니다. 심히 고민하고 슬퍼하며, 땀에 피가 베어날 정도로 절규하시던 예수님께서는 이윽고 기도를 마치고 제자들에게 오셔서 말씀하셨습니다.

26: 45-46 -"보라 때가 가까이 왔으니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내가 언제 고민하고 슬퍼했느냐는 듯 추호도 흔들림도 없이 십자가의 죽음을 향해 발을 내디디셨습니다. 십자가의 죽음을 피하기 위해 절규하시던 예수님께서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뜻은 자신을 십자가의 죽음으로 이끌어 가시는 것임을 확인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길을 기꺼이 감수하실 수 있었던 힘과 용기와 지혜의 원천이 바로 겟세마네의 기도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이처럼 기도를 통해 하나님의 이끄심을 바르게 분별하셨습니다. 인간이 본능과 욕망을 좇아 사는 것은 전혀 어렵지 않습니다. 죄의 본성을 타고난 인간은 가만히 내버려 두어도, 나이에 상관없이 그 길을 마냥 질주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주님의 이끄심을 받는 것은 절로 되지 않습니다. 그것은 기도를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기도만이 우리의 본능으로부터 우리를 지켜 주고, 이 세상에서 주님을 좇는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갈 힘과 용기와 지혜를 줍니

.

인간이 어려운 일을 당할 때, 자신의 한계에 부딪힐 때, 심히 슬퍼하며 고민하지 않을 수 없는 극한 상황에 직면할 때, 주님의 도우심을 간구하며 자신의 바람을 아뢰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러운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기도의 동기 일뿐입니다. 기도의 궁극적 목적은 피조물에 불과한 인간이 자기 기도의 내용을 고수하려는 데 있는 것이 아니라,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께서 하신 것처럼 기도의 내용이 하나님의 뜻으로 바뀌고 승화되는 데 있습니다. 삼위일체 하나님께 자신을 내려놓고 낮고 낮은 마음으로 기도하는 가운데 주님이 이끄심을 받는 것은 물론이요, 천지를 창조하신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바람이나 계획이 얼마나 부질없는 지 바르게 판단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매일 일정한 시간을 정해 놓고 기도하기를 게을리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기도하되 자기 기도의 내용을 고수함이 아니라, 도리어 버릴 수 있게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스스로 띠 띠고 자기 원하는 곳으로 가기 위해 간구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 앞에 두 팔을 벌리고 온전히 주님의 이끄심을 받기 위해 기도합시다.

자신의 욕구와 본능의 성취를 위해서가 아니라 세상 끝이 가까운 이 시대에 그리스도인다운 그리스도인으로 살아가기 위해 기도하시기 바랍니다.

세상은 결코 예배당 안에서 새로워지지 않습니다. 세상은 예배당 밖에서 기도하며 그리스도인답게 살아가는 그리스도인에 의해 새로워지는 것입니다. 그런 사람만이 세상을 새롭게 하는 주님의 도구로 쓰임을 받을 수 있습니다.
교회가 중요하다면 그 역할이, 교회를 이루는 사람들을 세상 속의 그리스도인으로 세워 주는 데 있기 때문입니다. 이 세상이 인간의 최종 목적지가 아니요, 가야 할 하나님의 나라,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바로 그 하늘나라가 있음을 아는 사람에게 그런 교회, 그런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보다 더 값진 삶이 없습니다. 그 삶이 곧 이 시대를 위한 사도행전이기 때문입니다.

그 삶은 오직 기도에 힘쓰는 것에서 시작됨을 믿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祈禱)

예수님을 모시고 3년이나 살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승천하신 뒤, 무엇보다 먼저 기도에 힘썼습니다. 기도 아니고는,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인답게 살 수 없음을 누구보다 잘 알았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그들은 그들에게 임재하신 성령님의 이끄심을 받았고, 예배당 안에서가 아니라 세상에서 세상을 새롭게 하는 사도행전을 일구었습니다. 뜻이 계셔서 이곳에 실로암 교회를 세우시고 우리들을 이 실로암 교회로 불러 주신 하나님! 우리의 수가 하늘의 별처럼 많아진다 한들, 기도 없이는 우리가 이기적인 인간의 집단에 지나지 않을 것입니다. 우리 모두 한 마음으로 기도에 힘쓰게 도와주시옵소서. 감람산에서 예수님처럼 기도하는 가운데 우리의 기도의 내용이 변하게 하시고, 주님 앞에 두 팔을 벌리고 항복하여 주님의 이끄심을 받기 위해 쉬지 않고 기도하게 해 주옵소서. 오직 기도를 힘입어, 이 세상에서 평생토록 세상을 새롭게 하는 그리스도인다운 그리스도인, 교회다운 교회로 살아가는 기쁨을 누리게 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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