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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문제인가 가능성 인가

  • 총회자료실
  • 관리자
  • Jun 25, 20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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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인가 가능성 인가

  안석수 목사 

*본문/ 13:25-34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의 종살이에서 해방되어 나온 지 22개월 20일 만에 약속의 땅 가나안에 가까운 바란 광야 가데스에 도착했습니다.

모세는 가나안 땅을 탐지하기 위해 12지파에서 대표 한 사람씩 뽑아 열 두명을 정탐꾼으로 보냅니다. 육체적 건강에서나 정신적 판단력에 있어서 이스라엘에서 대표로 뽑힌 일꾼 중의 일꾼입니다. 이들은 나름대로 영향력이 있는 리더 그룹 사람들입니다. 정탐꾼들은 40일간 모든 지역을 다 돌아본 후 이스라엘 백성과 모세 앞에서 보고를 했습니다. 보고를 듣던 백성들 사이에 한숨과 한탄 그리고 동요가 일기 시작합니다. 갈렙은 백성을 조용하게하며 우리가 곧 올라가서 그 땅을 취하자 능히 이기리라.” 하였지만 다른 정탐꾼들은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라고 선동하기 시작했습니다.

여기서 주목할 것은 하나님께서 이미 가나안 땅을 이스라엘에게 주시기로 아브라함 때부터 누차 약속하였고, 정탐꾼을 보낼 때도사람을 보내어 내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가나안 땅을 탐지하되라고 하였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실 가능성이 있는 땅이 아니라 주는 가나안 땅이라고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스라엘에게 주신 땅을 답사하라 하신 것입니다. 정탐꾼들에게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지형과 상황을 잘 파악하고 오라고 보냈지, 가나안을 자신들이 정복할 수 있는지, 들어갈 것인지를 결정하기 위한 자료를 모으라고 보낸 것은 아닙니다. 가나안 땅은 이미 하나님이 주시기로 약속하셨고, 들어가기로 되어 있습니다. 모세도 그들을 보내면서 탐사할 내용을 상세하게 가르쳐 주었습니다. 그 땅 거민이 강한지 약한지, 많은지 적은지, 땅이 좋은지 나쁜지, 성읍이 진영인지 산지인지, 토지가 비옥한지 메마른지를 탐지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종합하면 어느 길로, 어느 성읍으로 들어가야 할 것을 알기 위해서입니다. 다시 말하면 들어가는 것은 분명한 하나님의 뜻이요, 예정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정탐꾼들은 자기들 권한 밖에 속하는 것에 대하여 주제 넘는 언행을 함으로써 백성들을 낙심하게 하고 믿음을 떨어뜨리고 하나님을 배반하게 만들었습니다.

백성과 정탐꾼은 일시적인 기분으로 잠시 그렇게 한 것이 아닙니다. 지혜로운 조언과 충고의 말을 듣고도 완악하게 하나님을 향한 불신의 말을 쏟아놓습니다.

1:30-31 - “너희보다 먼저 가시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애굽에서 너희를 위하여 너희 목전에서 모든 일을 행하신 것 같이 이제도 너희를 위하여 싸우실 것이며 광야에서도 너희가 당하였거니와 사람이 자기 의 아들을 안는 것 같이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가 걸어온 길에서 너희를 안으사 이 곳까지 이르게 하셨느니라.‘

이처럼 모세는 강대한 민족 앞에서 두려워하는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보게 하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들의 시선을 땅에 있는 사람들이 아닌 하늘에 계신 하나님을 향하도록 촉구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의 태도는 완강했습니다. 심지어 하나님을 악평 하면서 하나님이 우리를 미워서 죽이시려고 잘살고 있는 우리를 이끌어 내어서 이곳으로 불러내셨을 것이다.”라는 무엄한 소리를 함부로 지껄이기도 합니다. 또 열두 명의 정탐꾼 중 열 명은 완전히 불신에 빠져듭니다.

13:31 -“우리는 능히 올라가서 그 백성을 치지 못하리라. 그들은 우리보다 강하니라.”

여기서 우리들이 깨달을 수 있는 사실은 무엇일까요? 그들이 직면한 사실이 문제가 아니라 그 사실을 해석하는 해석의 문제라는 것입니다. 즉 열 두 정탐꾼은 똑같은 것을 보고 왔습니다. 그것은 비옥항 땅, 풍성한 열매, 큰 민족, 이 세 가지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가나안 땅은 하나님의 말씀 하신대로 젖과 꿀이 흐르는 땅이었습니다. 포도 한 송이를 두 명이 들어야 할 만큼 풍성했습니다. 거봉도 그런 거봉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곳은 강력한 여러 부족이 살고 있었습니다. 그것은 그들이 애굽에서 나온 순간 주사위는 이미 던져졌고 그들과 전투를 해서 승리하는 일만 남아 있습니다.

 

정탐꾼들이 보고 온 사실 가운데서 긍정적인 요소와 부정적인 요소가 함께 있습니다. 가나안 땅이 비옥하여 과살이 풍성하다는 것은 긍정적인 사실입니다. 매력적이며 하나님께 감사해야 할 사항입니다. 한편 그 땅에 많은 백성들이 살고 있고 게다가 장대한 민족들이 살고 있다는 부정적인 사실입니다.

사실에는 항상 양면이 있기 마련입니다. 어느 하나가 좋다면 다른 하나는 좋지 않는 것도 있습니다. 어느 하나만 취할 수 없는 것이 세상의 이치 같습니다. 인생의 성공과 실패 차이는 사실들 중 어디에 초점을 맞추고 강조하여 보느냐 하는 데 있습니다. 어떤 것을 더 크게 볼 것인가는 우리의 선택입니다. 열 명의 정탐꾼과 백성들은 부정적인 사실, 즉 강력한 민족들이 가나안에서 살고 있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좌절했습니다. 그러나 두 명의 정탐꾼인 여호수아와 갈렙은 부정적인 사실보다는 하나님께서 함께 하신다는 사실에 더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결국 강조점의 차이가 운명을 갈랐습니다. 긍정적인 성격이든 부정적인 성격이든 사실 그 자체가 진리는 아닙니다. 진리는 사실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달린 것입니다. 관찰한 것이 어떠하든 하나님은 그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어 살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이런 약속에 따라서 사실을 판별해야 합니다. 그들이 비록 강하기는 하지만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땅을 약속하셨다. 그러므로 우리가 그들과 전쟁을 한다 하더라도 우리가 기필코 이길 것이다. 그들은 우리의 밥이다.”라고 해야 진리입니다. 이와 같은 올바른 해석을 통해서 진리를 발견하지 못한다면 결국 자신이 두려워하는 사실을 과장하거나 왜곡하게 되고, 자신의 올무에 자신이 걸리게 되는 것입니다.

 

우리가 사실을 해석할 때 꼭 기억하야 할 사실이 하나 있습니다. 인생의 모든 사건의 해석은 하나님께 있다는 것입니다. 거친 바다를 항해하는 배가 무사히 목적한 항구에 도달하기 위해서는 북극성의 도움을 받아야 하듯이 모든 것들의 위치를 결정할 절대적인 기준이 필요합니다. 우리 인생의 올바른 해석자는 오직 하나님 한 분 뿐입니다. 요셉을 보십시다. 아버지 야곱으로부터 총애를 받던 시절 외에는 고난의 가시발길을 걸었습니다. 온통 부정적인 사실들뿐이었습니다. 사실로만 따지면 요셉이야말로 가장 불쌍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렇지 않습니다. 그의 삶을 형편없고 무기력한 사람이라고 해석할 사람이 누구입니까? 하나님은 요셉의 삶을 위대하게 하셨습니다.. 그에게 위대한 꿈을 주신 하나님께서 친히 요셉의 길을 인도하시고 하나님의 사역을 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

눈에 보이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해석이 중요합니다. 보디발 장군의 감옥에 있을 때 술 맡은 관원장과 떡 굽는 관원장이 몽조가 다른 꿈을 꾸고 각자 근심할 때 요셉이 말합니다. 내게 말씀해 보세요. 해석은 하나님께 있지 않습니까?”

어디 꿈만 그렇겠습니까? 우리 인생도 역시 동일한 원리가 적용됩니다. 우리 일생의 정확한 의미와 가치는 하나님이 결정하십니다.

50:20-21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들을 기르리이다.”

요셉은 꿈이나 인생의 사건들을 해석하시는 분은 하나님이라는 섭리를 믿었습니다. 그래서 요셉은 수없이 많은 난관을 겪었습니다. 사건에 대한 해석이 하나님께 있다는 사실을 철저히 믿고 고백합니다. 그렇게 믿었으므로 그는 억울하고 불안하고 불공정한 일을 겪으면서도 평안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미국의 유명한 신발회사에서 시장조사차 아프리카 미개국에 세일즈맨을 보냈습니다. 처음 간 세일즈맨은 그곳의 사람들이 맨발로 다니는 것을 발견했고 이런 보고서를 보냈습니다. 이들은 신발을 신지 않는 사람들이기 때문에 그들에게 신발은 필요 없습니다. 전망이 암울합니다.” 두 번째 세일즈맨은 똑같은 곳에서 이런 보고서를 올렸습니다. 그들은 신발을 신고 살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가능성이 무한합니다. 그들에게 신발의 필요성을 잘 알게 한다면 이 시장은 황금알을 낳는 거위가 될 것입니다.‘

객관적인 사실에 기초하고 있지만 상반된 보고는 사실상 두 세일즈맨의 해석의 결과요, 또한 각 사람의 성향의 차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동일한 사실을 놓고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그것이 문제가 될 수 있고, 가능성이 될 수도 있습니다.

29:25 -“사람을 두려워하면 올무에 걸리게 되거니와 여호와를 의지하는 사람은 안전하리라.”

정탐꾼들의 문제는 정탐한 사실을 문제라 긴주 했고 기회라고 생각하지 못했기 때문에 나온 결과입니다.

정탐꾼 중 여호수아와 갈렙 두 사람이 모세와 아론을 변호하여 여론을 바꾸어 보려 하였으나 오히려 백성들을 더욱 자극한 결과가 되어 백성들이 돌을 들고 그들을 치려할 때 드디어 하나님께서 간섭하시게 되었습니다. 노여움을 띤 채 모세에게 물으셨습니다. 이 백성이 어느 때까지 나를 멸시하겠느냐?”, “어느 때까지 나를 믿지 않겠느냐?” “내가 어느 때까지 참으랴?”

어느 때까지 멸시하겠느냐?”라는 하나님의 말씀에 많은 사람들은 우리가 언제 주의 이름을 멸시하였나이까?반문할지 모릅니다. 사람을 멸시하듯이 하나님을 멸시한 적이 없다고 강변할 것입니다. 다만 그들의 눈앞에 닥친 현실이 녹록치 않아서 넋두리한 것뿐이라고 변명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사실은 하나님께서 그들이 하나님을 멸시했다고 생각하셨다는 점입니다. 하나님이 그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였는데, 들어갈 수 없다고 하면서 원망하는 것이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다 망각하고 자기들을 가나안인의 손에 의해 죽이려 한다고 하나님을 잔인한 분으로 만드는 것이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에 대한 믿음도 없고, 하나님이 모든 것을 섭리하시고 주관하신다는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지 않고 자신의 듯대로 판단하고 결정하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멸시하는 것을 우리는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멸시하지 않기 위해서 우리가 어떻게 해야 할까요? 바로 하나님의 시각으로 현실을 보는 것입니다. 문제를 문제로 보는 것은 세상 대다수의 사람들이 하는 것입니다. 사실 열 명의 정탐꾼들은 하나님의 사람이 아니라 세상의 사람입니다. 하나님 나라는 민주주의가 아니라 왕국입니다. 다수의 사람에 의해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의해 다스려집니다. 하나님의 안목으로 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시선으로 볼 때 문제는 새로운 가능성으로 보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나라 사람의 시각입니다. 사람의 안목으로 보면 문제가 커 보여도 하나님의 안목에서 보면 문제가 작아집니다. 예배하는 것, 기도하는 것, 성경 읽는 것은 하나님 높이에서 세상을 보는 안목을 열어 줍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이 바로 하나님의 세계관, 성경적 가치관을 지니고 있었던 사람들이요, 하나님의 이름을 영화롭게 한 사람들입니다. 그들도 동일한 정탐꾼과 같이 동일한 사실을 듣고 보고 왔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해석은 완전히 달랐습니다.

신앙인은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만 세상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반면 불신자는 하나님을 멸시하고 세상을 두려워합니다. 믿음은 하나님만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메뚜기 콤플렉스를 가진 사람은 문제만 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시야를 지닌 사람은 기회를 봅니다. 이번에는 무슨 은혜를 주시려는가?”하고 기대합니다.

이런 시각의 차이, 신앙과 불신앙의 차이가 운명을 가릅니다. 단순히 의견 차이라고만 치부할 수 없습니다. 예수님의 표현대로 자신들의 믿음대로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말씀하셨습니다. 민수기 14:28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니.”

여호수아와 갈렙은 무명의 사람에게 이스라엘을 영도하여 가나안에 들어가는 차세대 지도자로 부상합니다. 출애굽한 모든 사람들이 다 가나안 땅에 들어간 것이 아닙니다. 무릇 20세 이상 된 사람들로서 부정적인 말을 했던 사람들은 광야에서 죽어 거기 뼈를 묻어야 했습니다. 하나님을 멸시한 사람들은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맛볼 수 없습니다. 그들은 죽을 때까지 광야에서 유리하는 운명에 처하게 되었습니다. 땅을 정탐한 하루를 1년씩 환산하여 40년간을 방랑하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왜 그들이 2년 반만에 들어갈 수 있었던 가나안 땅을 40년 만에 들어간 이유입니다.

 

헬렌 켈러는 태양을 쳐다보고 살아라. 그러면 그림자를 보지 못하리라.”라고 했습니다. 우리가 어둠에 사로잡히는 것은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삶의 어떤 일이 불확실할 때, 문제로 보십니까? 아니면 가능성으로 보십니까? 가능성을 보기 위해서는 사명을 자각해야 합니다. 건강한 비전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관점을 가질 필요가 있습니다. 사실 자체보다는 진리를 추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해석해 주시는 대로 바라보이야 합니다. 몸이 아프다면 하나님의 치유와 회복의 기회로 보아야 합니다. 슬플 때 하나님의 기쁨이 충만히 채워질 기회로 보아야 합니다. 궁핍할 때 하나님의 풍성을 경험할 기회라고 여겨야 합니다. 염려되는 일이 있을 때 하나님의 평강이 어떻게 들어오는가를 관찰할 기회입니다. 어둠에 휩싸여 있을 때 하나님의 광명을 기대하는 기회가 됩니다. 부정적인 생각을 버리시고 긍정적인 시야로, 하나님의 해석 방법에 따라서 여러분의 삶을 보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권고하실 것입니다.

 

祈禱)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가나안 땅을 주어 살게 하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우리는 약속에 따라서 사실을 판별해야 합니다. 자신이 두려워하는 사실을 과장하거나 왜곡하게 되고, 올무에 걸리게 되는 것입니다. 눈에 보이는 사실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해석이 중요합니다. 신앙인은 하나님을 두려워 하지만 세상은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메뚜기 콤플렉스를 가진 사람은 문제만 보고 하나님의 시야를 가진 사람은 기회를 주신다는 시각의 차이가 신앙과 불신앙의 차이가 운명을 가른다는 사실을 깨닫게 해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또 우리가 궁핍할 때 하나님의 풍성을 경험할 기회라고 여기고, 염려되는 일이 있을 때가 하나님의 평강이 어떻게 들어오는가를 판단할 기회이고, 어둠에 휩싸여 있을 때가 하나님의 광명을 기대하는 기회가 된다는 사실을 우리들이 다시 한 번 기억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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