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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시기(猜忌)

  • 총회자료실
  • 관리자
  • May 06, 2018
  • 조회 3550

시기(猜忌)

  안석수 목사 

*본문/ 13:44-46

 

바울과 바나바가 비시디아 안디옥에 이르러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니 회당장이 사람을 보내어 백성을 권할 말이 있거든 말하라 하여 바울이 복음을 전파앴습니다. 바울은 그곳 사람들의 요청으로 그다음 안식일에도 유대인의 회당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했습니다. 이번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운집했습니다. 지난 안식일에 바울의 설교를 듣고 감화 받은 사람들의 입소문으로 회당에 올 수 있는 사람은 거의 다 모인 것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알지 못하던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위해 회당에 모였다면 그것은 얼마나 고무적인 일입니까? 또 그 동기를 제공한 사도 바울은 존경을 받는 것이 마땅한 일일 것입니다. 그러나 어이없이 바울을 시기하는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이 바울을 시기하는 이유도 기가 막혔습니다. 본문은 그 무리를 보고 시기가 가득하여라고 증언합니다. 바울이 무슨 잘못을 했거나 실수를 저질렀기에 그들이 바울을 시기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들이 바울을 시기한 이유는 단 하나, 바울의 설교를 듣기 위해 수많은 사람들이 운집한 것이었습니다. 그날 바울의 설교를 듣기 위해 회당으로 모여든 사람들의 수가 지난 안식일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많은 사람들이 모여든 것이 문제였습니다.

 

그렇다면 바울을 시기한 유대인들은 구체적으로 어떤 유대인들이었을까요? 그들은 두말할 것도 없이 그동안 유대인의 회당에서 설교를 맡아온 유대교 지도자들과 그 추종자들이었습니다. 그 바울의 설교를 듣고자 자신들이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인파가 모여든 것을 보고 유대교 지도자 무리는 불타는 시기심에 사로잡히고 말았습니다. 느닷없이 나타난 바울로 인해 자신들의 권위와 자존심이 큰 손상을 입었다고 여긴 탓이었습니다.

 

여기에서 우리들에게 주는 메시지가 무엇일까요?

어떤 인간에게든 시기의 대상은 언제나 자신이 속해 있는 분야에 있는 사람이라는 것입니다. 교인은 교인을 시기하고 목사는 목사를 시기합니다. 우리 자신도 예외일 수는 없습니다. 우리가 정말 깨어 있지 않으면, 우리 역시 본문의 유댜교 지도자들처럼 시기할 수밖에 없습니다.

 

시기가 무서운 것은 인간의 시기는 절대 시기 그 자체만으로 멈추지 않기 때문입니다.

본문 45유대인들이 그 무리를 보고 시기가 가득하여 바울이 말한 것을 반박하고 비방하거늘

바울을 시기한 유대교 지도자 무리는 바울이 한 말을 반박하였습니다. 헬라어 원문에는 반박하다라는 동사가 미래완료형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들이 바울이 한 말을 한 번 반박하고 그친 것이 아니라 거듭 반박했다는 의미입니다. 이를테면 바울이 말할 때마다 반박한 것이었습니다.

시기는 정말 무서운 것입니다.

창세기에 등장하는 야곱은 열두 아들 중에 열한 번째 아들인 요셉을 가장 사랑하였습니다. 요셉에게만 채색 옷을 지어 주고 요셉만 편애한 것입니다. 요셉 위로 열 명의 형들이 요셉을 시기하였고, 그 시기심으로 요셉을 죽여 버리자는 논의를 거쳐 그를 노예로 팔아버렸습니다.

신약성경에서도 우리는 똑같은 광경을 접하게 됩니다. 예루살렘의 유대교 지도자들이 유대 민중을 선동하여 예수님을 빌라도 총독에게 끌고 가, 예수님에게 사형을 언도하도록 압력을 넣었습니다. 그때 빌라도 총독은 그들이 예수님을 죽이려는 이유가 그들의 시기심 때문임을 이미 알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이 행하신 이적과 기사에 경탄한 유대 민중들은 예수님을 왕으로 옹립하려 하였지만 예수님께서는 단호히 거절하셨습니다. 예수님을 그대로 두었다가는 유대교 지도자들이 누리는 기득권의 기반인 유대교가 와해될 것이 두려워 그들은 끝내 예수님을 로마황제에 대한 반역의 죄인으로 몰아 십자가에 못 박아 죽여 버리고 말았습니다. 예수님에 대한 그들의 시기심 역시 예수님 존재 자체를 부정하는 것으로 드러난 것이었습니다.

 

형제를 시기하여 동생을 노예로 팔아버린 요셉의 형들, 예수님을 시기하여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인 예루살렘의 유대교 지도자들, 풍토병에 걸린 병약한 몸으로 목숨을 걸고 타우루스 산맥을 넘어 비시디아 안디옥 사람들에게 생명의 말씀을 전한 바울을 시기하여 쫓아버린 그곳 유대교 지도자 무리, 그들의 이야기는 결코 남의 야기가 아닙니다. 우리 각 사람들이 살고 있는 우리의 인생 강가에는 수많은 사람들이 우리와 함께 살고 있습니다. 가정에서도, 일터에서도, 교회에서도, 사회 속에서도, 우리는 수많은 사람들과의 관계 속에 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 역시 얼마든지 누구를 시기하고, 그의 존재 자체를 부정하려는 불의의 범죄를 저지를 수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우리가 요셉의 형들이나 유대교 지도자들처럼 스스로 시기의 덫에 빠지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날 수 있을까요?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속에서 자기 존재에 대한 절대적 의미를 깨닫는 것입니다. 우리 각 사람은 하나님에 의해 개별적으로 지음 받은 절대적 존재입니다. 이 사실을 깨닫는 사람만 자기 자신을, 자신이 행하는 일을 다른 사람과 비교하지 않으므로 이 세상 그 누구도 시기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2천 년 전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을 이후 그 누구 한 사람 시기하지 않은 것은,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이 절대적 존재임을 그가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끊임없는 시기와 모함과 박해 속에서도 자신이 걸어야할 길을 조금도 흔들림 없이 꿋꿋하게 걸을 수 있었습니다.

고 박목월 시인의 장남이자 부모의 신앙을 이어받은 독실한 그리스도인인 박동규 교수의 시입니다.

나는 들꽃이어라.

아무도 알아주지 않아도 괜찮아

외로우면 바람하고 놀고

쓸쓸하면 별들하고 애기하고 살아

나의 이 소박한 향기를

이 세상 들판에

돈 안 받고 환하게 풍기다가 가리라.

자기 자신이 하나님께서 정성들여 빚으신 하나님의 절재적인 존재임을 깨달은 들꽃이 백합화를 시기하겠습니까? 하나님께서 빚으신 백합화가 소중한 것처럼 하나님에 의해 빚어진 자기 자신도 소중한 들꽃임을 알아야 합니다.

들꽃인 자신의 소박한 향기가 소중하기에 백합화의 짙은 향기가 비로소 소중할 수 있음을 알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 세상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아도 자신을 절대적 존재로 빚어 주신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향기를 이 삭막한 세상 들판 속에 그윽하게 뿌리며 살아야 할 것입니다.

박동규 교수님은 또 인생은 동물적 본능으로 사는 것이 아니라, 감수성의 더듬이로 가슴 깊은 곳까지 더듬어 인간의 사랑에 대한 인식과 정서를 스스로 가꾸어 가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우리 모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로운 생명을 얻었다는 의미에서 그 생명의 가치에 대한 발견과 그에 걸맞은 변화를 꾀하는 영적 시인이 되십시다. 독생자를 버리시기까지 우리를 사랑하신 하나님의 깊은 사랑을 말씀과 기도 속에서 믿음의 더듬이로 더듬어, 그 사랑 앞에서 하나님의 절대적 존재로 일어서십시다. 우리 자신이 아무리 볼 폼 없고 이 세상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 들꽃이라 해도, 우리를 하나님의 절대적 존재로 빚어 주신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진리의 향기를 이 삭막한 들판에 그윽하게 풍기는 진리의 시인으로 살아가십시다.

그때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통해 우리 인생의 강가를 향기로운 진리의 꽃밭으로 일구어 주실 것입니다. 우리를 하나님의 절대적 존재로 빚어 주신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습니다.

 

祈禱)

하나님 아버지, 그동안 우리는 풍토병에 걸린 병약한 몸으로 타우루스 산맥을 넘어 비시디아 안디옥에 생명의 말씀을 전한 사도 바울을 시기하여, 귀부인들과 유력자들을 선동하여 바울을 쫓아버린 유대교 지도자 무리였습니다. 그래서 우리 삶에는 말씀의 모습만 있었을 뿐 말씀의 향기는 없었고, 우리가 살고 있는 인생의 강가에는 매사에 시기하고 비방하는 우리로 인해 수많은 사람들이 고통당해 왔음을 이 시간 깨닫게 해 주셔서 감사 합니다 .우리의 이 어리석음을 회개 하오니 용서해 주옵소서. 이제 말씀과 기도 속에서, 우리를 살리신 하나님의 사랑을 믿음의 더듬이로 더듬어 알게 해 주옵소서. 하나님의 사랑 앞에서 우리 자신을 누구와도 비교하지 않는 하나님의 절대적인 존재로 우뚝 서게 해 주옵소서. 아무리 우리의 모습이 초라하고 이 세상 그 누구도 알아주지 않는다 해도 오직 하나님 앞에서, 하나님을 위해, 하나님께서 주신 말씀의 향기를 이 세상 들판에 그윽하게 풍기게 해 주옵소서.

그렇게 살아가는 우리로 인해 우리 인생의 강가가, 날이 갈수록 말씀의 꽃밭으로 변화되게 하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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