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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교)정돈하는 삶

  • 총회자료실
  • 관리자
  • Nov 24, 2017
  • 조회 8362

정돈하는 삶

(안석수목사)

*본문/ 9:32-36

 

제가 오랫동안 설교해 온 사도행전 91-31은 초대교회에 등장한 사울에 관한 증언입니다. 잘못된 자기 신념에 사로잡혀 예수님을 부정하고 교회를 잔멸하던 사울이 어떻게 주님의 부르심을 받았으며, 예루살렘과 다메섹을 거쳐 자신의 고향인 다소로 낙향하기까지 어떤 일이 있었는지를 소상하게 밝혀 주는 내용입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은 베드로에 관한 내용입니다.

본문 32절과 36의 기록입니다.

그때에 베드로가 사방으로 두루 다니다가 룻다에 사는 성도들에게로 내려갔더니” “욥바에 다비다라 하는 여제자가 있으니 그 이름을 번역하면 도로가라 선행과 구제하는 일이 심히 많더니

베드로가 예루살렘 서북쪽 지중해 연안 도시인 룻다와 욥바에 이르기 전에 그곳에는 벌써 주님을 믿는 그리스도인들이 있었습니다. 그것이 베드로가 그 성읍들을 찾은 이유였습니다.

빌립이 에디오피아 내시를 만난 남쪽 광야 길이 끝나는 가사 왼쪽 아소도에서부터 시작하여 지중해 연안을 따라 북상하면서 가이사랴에 이르기까지 여러 성읍을 누비면서 복음을 전하였습니다. 따라서 지중해 연안에 속해 있는 룻다와 욥바의 사람들이 그때 빌립으로부터 복음을 전해 받았음을 우리는 쉽게 짐작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오늘 본문 속에서 사도 베드로가 그들을 찾아 간 것입니다.

이처럼 사도 베드로는 그 자신이 먼저 예루살렘을 뛰어넘는 복음의 개척자가 되지는 못했지만, 헬라파 그리스도인들이 닦아 놓은 선교의 길을 좇아가며 자기 한계 내에서 자기 소임에 최선을 다하였음을 오늘 본문이 우리에게 증언해 줍니다.

여기에서 우리들은 다른 사람들보다 더 큰 능력이 있느냐 없느냐는 하나님 앞에서 전혀 중요하지 않다는 사실을 우리는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중요한 것은, 우리의 한계 내에서 우리에게 주어진 일들에 얼마나 우리가 최선을 다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언제나 하나님께서 부여하신 일들에 최선을 다하는 사람들을 통해 역사하시기 때문입니다. 베드로가 비록 무식한 갈릴리 어부 출신이었지만, 그가 자기 한계 내에서 하나님을 위해 최선을 다할 때, 그를 통하여 어떤 역사가 일어났는지 오늘 우리가 살펴 볼 수 있습니다.

베드로가 만난 사람 중에 애니아가 있었습니다. 그는 중풍병으로 8년 동안이나 병상에 누워있는 사람이었습니다. 말이 쉬워 8년이지, 병상에 누워있는 애니아와 애니아를 돌보아야 하는 가족에게 8년이란 세월은 말할 수 없는 긴 고통과 절망의 기간이었을 것입니다. 베드로는 그 가련한 애니아를 보는 순간, 자신으로 하여금 애니아를 만나게 하신 하나님의 마음을 읽었습니다.

34의 기록입니다. 베드로가 이르되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자리를 정돈하라 한 대

베드로는 주님께서 자신을 통해 그 가련한 애니아를 치유해 주실 것을 확신하였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주님께서 중풍병으로부터 회복된 애니아가 새롭게 바른 삶을 살기를 원하신다는 사실도 알았습니다. 그래서 베드로는 애니아에게 단순히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라고만 말하지 않았습니다, 베드로는 애니아에게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고 말했습니다. 바로 그것이 주님으로부터 보고 배운 주님의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계시는 동안 제자들과 함께 예루살렘에 있는 베데스다 못에 가셨을 때의 일입니다. 그곳에는 언제나 온갖 종류의 병자들이 운집해 있었습니다. 이유는, 가끔 천사가 그 못으로 내려와 물을 휘젖는 데, 그때 가장 먼저 물속으로 들어가는 사람은 어떤 병에 걸려 있든 깨끗하게 낫는다는 믿음으로 인함이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 그곳을 찾아가신 날에도 환자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그 많은 병자들 가운데 무려 38년 동안이나 누워 있는 중환자를 발견하셨습니다. 그리고 그에게 다가가셔서 병이 낫기를 원하느냐고 물으셨습니다. 그는 당연히 낫기를 원했지만, 그러나 38년이나 누워 있는 터라 천사가 물을 휘져을 때 가장 먼저 물 속으로 들어갈 도리가 없는 자신의 괴로움을 예수님께 하소연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 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요한복음 58이르시되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하시니

38년 동안 누워 있는 중환자라면 일어나 걷는 것 이외에 다른 소원이 있을 수 없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중환자가 원하는 대로 일어나 걸어가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중환자에게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네 자리는 중환자가 깔고 누었던 거적자리를 의미합니다. 38년이나 된 중환자의 경우 그가 깔고 누워던 거적자리라면 얼마나 지저분하고 불결하고 역겹겠습니까? 뿐만 아니라 그 거적자리 주위는 얼마나 어수선했겠으며, 환자 그 자신은 또 어떠했겠습니까? 예수님께서는 38년 된 중환자의 육체만 치유되는 것이 아니라, 그 의 삶의 자리도 바르게 정돈되기를 원하셨습니다. 이것이 예수님께서 38년 된 중환자에게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고 명령하신 이유였고, 그 결과는 요한복음 59에 이렇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사람이 곧 나아서 자리를 들고 걸어가니라

예수님의 명령과 함께 38년 된 중환자는 곧 일어났습니다. 그는 기뻐 껑충껑충 뛰며 자기 길을 달려가지 않았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명령에 순종하여, 자신이 깔고 누워 있던 거적자리를 정돈하여 들고 갔습니다. 그가 지저분하던 자기 삶의 자리를 정돈하고, 그 삶이 정돈된 사람으로 거듭난 것입니다. 이 모든 사실을 예수님 곁에서 목격했던 베드로였기에, 자신이 예수님으로부터 배운 데로 룻다의 애니아에게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고 말했습니다. 주님께서 애니아에게 주기를 원하시는 것이 단지 육체만의 회복이 아니라, 정리된 삶으로의 회복임을 베드로는 정확하게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베드로의 말이 끝나는 즉시 애니아가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애니아가 자기 자리를 정돈하였습니다. 그리고 치유받은 애니아로 인해 룻다 인근 샤론의 많은 사람들이 주님을 영접하였습니다.

 

오늘 본문은 우리에게 새로운 깨달음을 던저 줍니다. 주님께서 우리에게 요구하시는 것, 다시 말해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기 원하시는 것은 삶의 정돈이라는 것을 깨달음입니다

.

신앙을 한마디로 정의하면 삶의 정돈이라 표현할 수 있습니다. 죄로 얼룩지고 헝클어졌던 삶이, 예수님의 십자가의 보혈 속에서 깨끗하게 씻어지고 정돈 되는 것입니다.. 욕망의 덫에 빠져 무절제하게 방황하느라 어수선하기만 하던 삶의 자리가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바르게 정돈되는 것입니다. 그릇된 감정과 이기심으로 갈기갈기 찢어졌던 인간관계가, 주님의 사랑 안에서 회복되고 정돈되는 것입니다. 바른 방향을 상실했던 삶의 목적, 말씀 안에서 하나님을 향해 바르게 확정되고 정립되고 정돈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삶의 정돈을 떠나서는 참된 신앙이 성립될 수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것은, 언젠가는 죽어 사라질 우리의 육체만을 위해서가 아니라 마치 38년 동안 거적자리에 누워있던 베데스다의 중환자처럼, 중풍병으로 8년 동안 꼼작도 못하던 애니아처럼, 죄와 죽음의 굴레 속에서 이지러질 대로 이지러진 우리의 삶을 하나님의 말씀과 생명으로 반듯하고도 영원토록 정돈해 주시기 위함입니다.

 

우리는 여기에서 삶의 정돈과 다른 사람을 위한 삶의 상관관계를 깨달을 수 있습니다. 말씀 안에서 자기 삶이 정돈된 사람만 다른 사람을 위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자기 삶을 정돈하지 못한 사람이 어떻게 다른 사람을 위한 삶을 살 수 있겠습니까? 그런데도 굳이 누군가에게 자리를 베풀려 한다면, 그것은 상대를 위한 자리가 아니라 도리어 상대를 해치는 자리가 되고 말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제 우리는 그동안 우리 스스로 해결할 수 없었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얻게 됩니다. 우리가 우리 나름대로 누군가를 위하여 편 자리에서 예기치 않은 문제가 계속 이어지고 있다면, 누군가를 위한 우리의 베품이 오히려 부작용을 일으키고 있다면, 사람의 이름으로 행한 우리의 행위가 도리어 상대방에게 상처를 입히는 결과를 초래하고 있다면, 그것은 우리의 삶이 말씀 안에서 아직 정돈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말씀 안에서 정돈된 베드로의 삶은 룻다의 애니아의 삶까지 정돈시켜 주는 생명의 터전이 되었고, 주님 안에서 정돈 된 사울의 삶은 온 인류에게 주님의 생명을 베푸는 생명의 통로가 되었습니다. 주님의 은총으로 삶의 정돈이 가능해진 애니아 역시, 룻다와 인근 지역의 사람들을 주님 앞으로 인도해 내는 생명의 견인차 역할을 하였습니다. 이처럼 말씀 안에서 이루어지는 자기 정돈은, 다른 사람의 삶까지도 정돈시켜 줍니다. 그래서 베드로가 애니아에게 명령 하였습니다. 애니아야, 예수 그리스도께서 너를 낫게 하시니, 일어나 네 자리를 정돈하라

 

이것은 2천 년 전 애니아만을 위한 명령이 아닙니다. 실은 오늘 우리 각 사람을 향한 하나님의 명령입니다.

비록 내가 병상에 누워 사지를 움직일 수 없는 상황이라 해도 나의 심령이 말씀 안에서 정돈되어 있다면, 나는 눈빛으로도 누구에겐가 사랑을 베풀고, 눈길만으로도 그의 삶을 정돈해 주는 진정한 그리스도인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나의 사지가 아무리 멀쩡해도 내 삶이 말씀 안에서 정돈되어 있지 않다면, 하나님 보시기에 나는 중증 환자일 수밖에 없습니다. 정돈되지 않는 우리의 삶은 수많은 사람을 찌르는 가시임에 틀림없기 때문입니다.

 

인생은 어둠이 뒤덮힌 산속을 헤매는 나그네와 같습니다. 인간 홀로는 그 어둠 속에서 삶의 방향을 알지 못해, 그 삶이 흐트러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말씀의 빛이 필요합니다. 말씀의 빛 속에서만 흐트러진 우리의 삶이 정돈되고, 말씀의 빛에 의해서만 우리는 그리스도인의 삶을 살아갈 수 있습니다.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그동안 말씀의 빛을 외면하여, 그동안 이지러지고 흐트러진 삶을 사느라 귀한 인생을 낭비해 온 우리의 어리석음을 회개하십시다. 말씀의 빛 속에서 우리의 어수선한 생각을, 이지러진 마음을, 찢어진 인간관계를, 흐트러진 삶을 정돈하십시다. 진정한 새날은 말씀의 빛 속에서 정돈된 삶으로부터 시작됩니다. 말씀의 빛 속에서 정돈된 삶만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려는 새로운 미래와 희망을 담는 그릇이 될 수 있기 때문입니다.

 

祈禱)

하나님 아버지! 칠흑 같은 어둠 속을 헤매면서도 말씀의 빛을 보지 않고, 빛이신 주님을 외면해 왔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외모는 멀쩡하지만, 우리의 내면은 8년 동안 병상에 누워 있던 중풍병자 애니아처럼 이지러지고, 흐트러지기만 했습니다. 그것을 알지 못한 채 우리의 인생을, 우리의 생명을 낭비해 왔습니다. 우리의 잘못을 용서해 주옵소서. 이 시간 말씀의 빛 속에서 우리의 흐트러진 생각이, 이지러졌던 마음이, 찢어졌던 인간관계가 그리고 우리의 삶이 정돈되게 하옵소서. 그리하여 정돈된 우리의 삶이, 다른 사람의 삶을 정돈시켜 주는 생명의 터전이 되게 하옵소서.. 이 이후로 우리가 만나는 모든 사람과의 만남이 베드로와 애니아의 만남처럼, 서로 간에 새로운 미래와 희망을 위한 출발점이 되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 드리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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